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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5일/ 섬김을 위한 궁핍

# 결국, 믿음 문제!

by 글탐가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고후 12:15)
성도의 진가는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발을 씻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출발점인 거 같다.


'하나님의 작가'가 무엇인가?

그 정체성에 대해 하나님께 질문했다.

나는 하나님이 작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자존감도 낮고, 자부심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 부분을 지적하셨다.

그 후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작가란게 무엇일까?'


한때, 성경을 토대로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작가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무게가 만만치 않아서, 하나님께 질문한 적이 있었다.


"성경을 토대로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은 목사님들이 해야 되는 일이 아닐까요?"


그렇게 하나님의 작가란 무게감에 눌려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한적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열매 맺기 힘들어졌고

작가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우여곡절끝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요즈음!


하나님께서 다시 물으신다.


"하나님의 작가란 무엇이냐?"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나를 믿느냐?"


"네!"


"그렇다면 세상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으로 너를 나타내려 하지 마라.

잠잠히 나를 바라봐라. 내가 할 것이다."


결국 내가 하나님의 작가냐 아니냐는

글을 쓰는 내용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개입하시고, 나와 동행하셔서,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일을 나타내보이시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였다.


결국, 믿음~ 문제!


결국, 나의 하나님의 작가라는 정체성은 하나님을 믿음으로만 나타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언제나 작가로서 바닥을 길 수 밖에 없다.


섬김을 위한 궁핍!

하나님의 방식대로 실행할 때, 한계에 부딪치는 일들이 많다.

그래서 궁핍해질때가 많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방법을 요구하신다면

우리는 순종해야 한다.

궁핍함과 상관없이, 우리의 선택이 하나님의 뜻을 향해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옳다.


요즘, 새롭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찾아오는 혼란스러움이 있다.

하지만 그 혼란스러움의 본질은 결국,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임을 알게 됐다.

혼란스러움은 어떤 삶에서든 다 있다.

하지만 답은 하나다.

내가 하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하나님의 방법은 '내가 할테니, 너는 네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잠잠히 나를 바라보며 기도해라!'

그것이 우리의 최선의 방법임을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닫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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