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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 희생의 즐거움

# 희생의 즐거움은 예수님을 사랑하는데서 시작된다.

by 글탐가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해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나 자신까지도 내어주리니 (고후 12:15)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 부으실 때 우리 마음은 다른 사람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관심과 일치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으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애착에 따라 사역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시험하는 최대의 시험입니다. 희생의 즐거움이란 나의 '친구'(예수님)을 위해 나의 목숨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단번에 목숨을 내던지는 듯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주님 및 주님이 관심을 가지신 다른 사람을 위해 나의 삶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3)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이라 한다.

오늘 묵상글에서 '희생의 즐거움이란 나의 '친구'(예수님)을 위해 나의 목숨을 내려놓는 것'이라는 글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참으로 재밌는 것은 그동안 나는 요한복음 15장 13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이 흘러넘쳐 이웃들에게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도 틀리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것은, 왜 나는 예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아 흘러가게 할 것만 생각했느냐는 것이다. 내가 예수님을 친구로 받아들여,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다는 생각은 정말 하지 못했다.


이해가 되는가?

주님(친구)을 사랑하는 마음이 흘러넘쳐 '주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그 사랑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공급받아 '이웃을 위해' 목숨을 버리려는 그 사랑을 실천하려고 애썼던 것이다.

행위로는 같은 행동이 나타나지만 본질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희생하느냐?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공급받아 희생하느냐?

이 문제는 오늘 묵상글의 제목처럼 희생의 즐거움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로 다가온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희생하는 것은 즐거울 수밖에 없다.

사랑하면 희생이란 생각보다 무엇인가를 더 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그리고 그것은 또 엄청난 즐거움이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를 해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지만 주님으로부터 공급받아 흘러넘쳐나가는 사랑은 나에게 즐거움보다 갈급함이 필요하다.

왜냐면 주님으로부터 계속해서 사랑을 공급받아야 하니까!

사랑이 기갈 되면 주님을 향해, 사랑이 흘러넘치게 해달라고 애원해야 한다.

주님이 사랑을 공급해주시면, 할 수 있는 사랑이다.

(사실, 우리는 사랑이 없는 자들이라 그 사랑을 공급받아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정말.... 말 그대로 주님을 사랑하면!!!!

그러면 공급받을 필요가 없다.

왜냐면 이미 주님의 우릴 향한 사랑은 차고도 넘치니까

나만 주님을 사랑하면 쌍방향의 차고 흘러넘치는 사랑이 된다.


그동안 나는 주님을 사랑하게 해 주세요!

라는 기도보다

주님의 사랑을 흘러넘치게 부어주세요!

라는 기도를 했다.


내가 사랑하면!

이미 완성되는 사랑이 아닌가?

주님의 십자가 사랑은 이미 우리(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한 최고 큰 사랑이 아닌가?

결국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느냐? 만 남아있는 것이다.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랑은 이미 완전한 사랑이다.


이제 기도를 바꿔야 할 거 같다.


"주님!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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