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제거된 생명

# 존재자체로 인정받아야 할 내 생명

by 글탐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갈 2:20)
죄를 멀리할 뿐만 아니라 사물을 보는 전반적인 견해가 바뀔 때까지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어놓기를 원하시는 것은 선행이나 정직, 노력이 아니라 참으로 지독한 우리의 죄성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서 가져가시려는 것은 바로 그 죄성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주님께서 주시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참으로 완전한 '의'입니다. 우리는 뭔가 된 것처럼 행동하는 위선과 하나님께 쓸모 있는 존재라는 착각을 제거해야 합니다.

주께서 나를 보시는 관점으로 나 자신을 보게 될 때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내 육체의 징그러운 죄악들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께 대항하는 무서운 교만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빛 가운데 자신을 볼 때 부끄러움과 공포와 처절한 비참을 체험하게 됩니다. 만일 당신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에 처해 있다면 그 위기를 뚫고 지나가십시오. 모든 것을 내려놓으십시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참으로 지독한 우리의 죄성,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우리에게서 제거하시고 싶은신 죄의 최고봉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항하는 무서운 교만이다.

그 교만은 태초에 시작된 하나님같이 되려 한 원죄이다.

하나님같이 되려고 한 우리의 교만은 뿌리가 참으로 깊은지 잘 뽑아지지가 않는다.

어느새 뽑았다고 생각하면 또 올라오고,

이제 끝인가 싶으면 또 올라온다.

육체의 생명이 끝나는 날까지 지속되어야 할 싸움인거 같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했는지 모른다.

육신의 죄성은 죽이고 부활의 영광에 참여한 자로 살아가는 것!

그러기 위해 뿌리깊은곳에서 올라오는 나의 교만을 메일같이 십자가 앞에 못박는 삶!


잠시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빗겨나가 있는 순간

바로 치고 올라오는 교만은 참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교만의 또다른 형태가 바로 자존감 낮음이다.

엄청 높아졌다가 엄청 낮아지기를 반복하는 교만의 형태!


엄청 낮아지는 것이 어찌 교만이냐? 묻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관점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 무시는 하나님을 대항하는 무서운 교만이다.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은 우리는 존재 자체로 사랑스러운 자들이다.

우리가 무엇을 잘하고 못해서도 아니고,

우리가 예뻐서도 아니고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냥 존재 자체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존재 자체로 귀한 자들이다.

그 귀함을 무시하고 철저히 자신을 짓밟아버리는 나의 생각!

그것은 바로 사단이 불어넣어준 또 다른 형태의 교만이다.

그런 생각이 들때 우리는 그 생각을 거부해야 한다.

자존감 낮음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자존감 낮음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어 죽음으로 끌고 가기도 한다.

그 모습은 마치 예수님을 팔아넘긴 후 스스로 목을 맨 유다의 모습과 닮아 있지 않은가?


유다가 귀를 기울인것은 사단의 생각이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예수를 팔 생각을 유다에게 불어넣은 존재가 사단이라고!

우리를 낮아진 자존감으로 우울하고 비참하게 끌고가는 것도 사단의 속삭임이다.

그 속삭임은 거부해야 한다.

그리고 소리쳐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나를 끊을 수 없다고!

나는 존재 자체로 고귀하고 사랑받을 존재라고!"


오직 예수님의 사랑, 그것만이 우리를 지독한 죄성으로부터 자유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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