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당혹스러움의 훈련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느냐?

by 글탐가
예수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막 10:32)
처음에는 주님을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했으나 지금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우리 사이에 큰 거리가 있음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주님과 친근감을 느낄 수 없고 그분은 저만치 앞서 가십니다. 그리고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그분이 어디로 가시는지 알 수도 없고 목적지는 이상하고 멀게만 느껴집니다.

제자의 길에서 당혹스러움의 훈련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실 제자의 길 가운데 위험은 자신의 작은 열정에 묻혀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당혹스러운 상황이 오면 그 어두운 상황이 끝날 때까지 잘 견디십시오. 때가 되면 주님을 따르는 것이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이 될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신앙생활 중에서 내가 가장 당혹스러웠던 상황은 주님의 응답이 없을 때였다.

묵묵부답!

신앙생활을 뜨겁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의 기도와 나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시고

역동적으로 나에게 반응하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어느 날엔가 마치 주님이 날 떠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무 응답도 없었다.

응답은커녕, 아예 나를 떠나신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될 느낌이었다.

아무리 기도 중에 부르짖어도, 말씀을 읽어도, 신앙의 교제를 해도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았던 때였다.


괴로웠다.

그래서 사람을 의지하기도 했다.

믿음의 선배들을 찾아가 질문을 하기도 하고,

성경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텅 빈 것처럼 공허한 것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지 못했다.


정말, 힘들고 당혹스러웠다.

그동안 내가 믿고 의지하던 하나님이 설마, 나의 환상이란 말인가?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이 맞는가?


그러한 고통스럽고 당황스러운 시간들을 맞이하면서

훗날, 하나님께서 그 시간을 허락하셨던 이유를 알게 하셨다.

은사나 느낌으로, 또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으로 교제가 이루어졌는데

만약 그것이 느껴지지 않아도,

음성이 들리지 않아도, 하나님을 믿는가에 대한 훈련이었다.


하나님이 떠났다는 생각이 들었고 허망했고 그동안의 신앙생활이 덧없다고 느끼기까지 하는

심각한 위기의 상황까지 갔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믿는 것이 자칫 허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믿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그렇게 점검됐던 믿음!

그 믿음은 바로 내가 느끼거나 느끼지 않거나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나를 죄에서 자유케하신 그 진리이심에

대한 확정된 믿음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거였다.


정말 믿는가?

그렇다면 믿는 것이 무엇인가?

만약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건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다면

내가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들과 무관하게

나는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셨다고 느껴졌던 그 당혹스러운 훈련의 시간들이

내가 믿는 예수님이 나의 마음과 감각과 나의 지각과 무관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믿는 것은 변화할 수 있지만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다.


내가 느끼지 못해도,

내 기도에 하나님의 응답이 없어도,

내 삶에 어떤 상황이 펼쳐져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가?


그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아도 내 안에 계신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과 하나 됨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는 훈련,

그것이 바로 당혹스러움의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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