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5일/ 이 땅에서 가장 미묘한 사명

# 무의식적인 세계에서 주님과 관계 맺기

by 글탐가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요 3:29)
신랑 예수님을 향한 우정과 충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주님과 함께 자발적이고 살아 있는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더욱 힘써야 합니다. 가끔 특별하게 순종할 만한 것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이때에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주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고 계속 주님과의 활기찬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종종 순종해야 할 때 순종하면 됩니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나 평범한 대부분의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의식적인 순종보다 주님과의 관계 유지입니다. 언제나 신랑 예수님과의 친구 관계를 누리는 것입니다. 종종 기독교 사역이 우리 마음을 빼앗아 주님께 집중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신랑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대신 우리는 주이 일을 한답시고 주님의 무기들을 사용하면서 도리어 주님께 대항할 수도 있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충수염 때문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6인실 병동이었는데,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수술을 앞두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한 명 두 명, 수술을 마치고 아직 마취가 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혹은 아픈 상태에서 던지는 말들이

참 재미있었다.


자신을 권사님이라고 소개한 분은 소탈하고 입담이 좋으신 분이었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 옆 침대에 누워있던 환자분과 수다 떠는 데 그 목소리가 병실 안에 다 들렸다.

어찌 됐든 그분이 수술을 마치고 다시 병실로 오셨는데, 마취가 덜 풀린 상태에서 고통스러웠는지

계속 끙끙대며 심음을 낼 정도로 힘들어하셨다.

그런데 그 마취상태에서 그 권사님이 계속 찾은 이름은 놀랍게 '주님!'이었다.

반복해 '주님! 으으으~~~'를 불렀다.


마취가 깨지 않은 무의식의 상태에서도 저분은 주님을 찾으실 정도로 주님과 친밀한 분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뒤늦게 고령의 할머니가 병실에 들어오셨는데,

그분은 큰 목소리로 쩌렁쩌렁, 정말 다른 말 한마디도 없이,

'아들!' '아들!' 하고 불러대는 것이었다.

처음에 사람들이 '아들!' '아들!' 부르는 소리에 웃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밤새도록 아들을 불러대자,

내 옆 침상에 누워있는 분은 간호사를 불러 두통을 호소하며

'아들'소리를 그만 듣고 싶다고 했다.


하루 동안 입원에 있는데도 정말 다양한 모습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문득 '무의식'의 세계가 그대로 드러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들이 우상인 고령의 할머니는 연신 아들만 불러대서 입원 환자들을 괴롭게 했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권사님은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찾는 그 친밀감을 가졌다.(참 부러웠다)


'나는 마취상태에서 어떤 말들을 내뱉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평상시에 내 마음을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

무의식의 세계에서조차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신앙을 가지면 참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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