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하나님을 향한 거룩입니까, 강퍅합입니까?

# 내 안의 중재자 되신 예수님을 모셔드리는 일

by 글탐가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사 59:16)
중보기도는 우리 자신을 붙들어 기도의 대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음을 갖기보다 기도 응답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 지의 논리를 펴 나갑니다. 당신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하나님과 논쟁합니까? "저는 주께서 이 일을 어떻게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지 않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뵈지 못하면 우리의 마음은 강퍅해지고 고집이 세어집니다. 자신의 간청들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던져두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분이 하셔야 한다고 명령을 내립니다. 이러한 기도 자세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려고 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강퍅해지면 다른 사람을 향해서도 강퍅하게 될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모세가 출애굽 하기 전,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결국 그 강퍅한 마음을 통해 우상을 드러낸다.

결국 10가지 재앙을 내려 그 강퍅함으로 드러난 우상들을 심판하신다.

우리 마음속에 숨어있던 강퍅함이 드러나는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보다 우선시 되는 우리 마음속

우상을 제거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

그것이 크든 작든 우상을 제거하는 일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심판이 있기에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그것이 사라졌을 때, 우리에게 놀라운 평안이 임한다.

그것은 오직 주님께로부터 오는 평안이다.


기도하는 시간은 특별히 그 강퍅함이 드러나는 시간이다.

세상으로 향해있던 나의 마음을 돌이키는 시간이기도 하고,

하나님 대신 보좌 위에 앉아 있는 나의 교만을 회개하며

나를 보좌 위에서 끌어내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보기도는 중요하다.


중보기도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의 의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귀를 열어야 하는 시간이다.

나의 요구사항을 간청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사항에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중보기도자로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길이다.

그 길은 내가 죽어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하면서 내가 중재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잇는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재자로

내 안에 모셔드려야 제대로 된 중보기도를 할 수 있다.


중재자는 내가 아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중보기도는 나를 주님께 온전히 내어드리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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