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주님의 고통과 우리의 친교

#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

by 글탐가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마 26:36,38)
겟세마네의 고통은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구세주가 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해야 하는 고통이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주께서 어떠한 대가를 치르셔야 하는지 그 비밀이 다 드러났습니다. 주님의 고통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반석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자'로서의 승리입니다. 십자가는 우리 주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승리하셨다는 표시입니다. 따라서 '인자'께서 고통을 겪으심으로써 누구든지 지금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신인 양성'

예수님은 완전한 신이시자, 완전한 인간이었다.

완전한 신인 하나님의 아들에만 머물러 계셨다면,

우리는 주님께 따졌을 것이다.


"당신은 신이시라 잘 몰라요. 신이니까, 인간의 마음과 고통을 모르는 게 당연하죠."


하지만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나도 너희들처럼 똑같이 고통을 느끼고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란다!"


그렇게 인자로서 이 땅 가운데 오신, 독생자 예수!


그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 가운데 오신 이유는 하나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생명을 얻기 위해서 치러야 할 대가는 다른 방법이 없다.

생명을 내어주는 것!


인간과 똑같은 고통을 느끼는 완전한 인간이셨던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와 고통과 병을 담당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것이 바로 대속의 역사, 십자가 사건이다.


쇠뭉치와 뼈 갈고리가 달린 채찍으로

살이 뜯기고, 피멍이 들고, 뼈가 깎이는 그런 고통을 다 감당하셔야 했던

예수님은 인간과 똑같이 그 고통에 대해, 인자로서 그 고통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하지만 예수님은 기도하셨다.

처음에는 '이 잔을 내게서 비껴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소서!'

하지만 세 번의 기도 끝에,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라고 바뀐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버거울 때,


'주님! 저에게 왜 이런 일을 주십니까? 저는 이 일이 너무 버겁습니다.

감당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처음에는 '제발 이 잔을 나에게서 비껴하게 하소서'로 시작했던 기도가

점점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우리의 기도도 바뀐다.


'힘겹다고 생각하는 이 일을 주님의 능력으로 잘 감당하게 하소서!

주께서 하실 줄 믿습니다.'


믿음 안에 있는 신앙이 좋은 형제자매들의 간증을 들으면

대부분 이러한 고백들이 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저는 그 일을 감당할 그릇도 힘도, 능력도 없는데

주님께서 이끄셔서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하고 볼품없는 무명한 자들을 사용하신다.

12명의 제자들도 그러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들에게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그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들의 연약함 대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그것이 그의 삶에 간증이 되고,

복음의 증거가 된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를 연약한 사람을 통해 확장시켜 나가시는 하나님!

그분의 사역은 항상, 우리를 동참시키시려는 계획이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에게 복 주시고 싶어서!


그 복은 단순히 이 땅에 머무는 복이 아니라

썩어지지도 않고 좀과 동록으로 공격받지도 않는 하늘 창고에 쌓아지는 복이다.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으로 기름진 복으로 충만한 하루와 인생이 되길 기도하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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