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 함께 부활에 참여함

# 막걸리 한잔의 미혹

by 글탐가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롬 6:5)
성령은 육체라는 집에서 손님으로 있을 수 없습니다. 삶의 전 영역을 지배합니다. 내가 나의 '옛사람' 곧 죄의 유전이 예수님의 죽음과 일치되어야 한다고 결단하면, 성령이 나를 점령하기 시작하시며 나의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이때 나의 역할은 빛 가운데 걷는 것이요 그분이 계시하시는 것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어제 주일 예배, 설교 말씀 중에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설교말씀을 들었는데...

오늘 묵상글에서 다시 접하게 되니, 하나님께서 '우리 몸은 성전이다' 라고 하시는 말씀에 대해

진지하게 묵상해봐야 할 거 같은 마음에 이 글을 쓴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요 2:19)


이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성전을 생각해서

예수님을 황당한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실제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다시 부활하신 당신의 몸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신령의 몸으로 부활하신 그 후로,

우리의 몸 역시, 성전으로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됐다.



성령이 내 안에, 내가 성령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거룩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모든 것이 성품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거듭나고 난 후, 우리는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칭의가 일어난다.

그 후로 성화의 과정에서 내 안에 거하신 성령께서 친히 좌정하시어

다스리시고 훈계하시며, 내 성품을 깎으시고 다듬어가신다.

그리고 성령의 9가지 열매를 하나 둘 맺게 하신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는가?

계신다면, 우리는 세상의 미혹을 받지 않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지만

우리는 온갖 세상의 미혹을 다 받는다.


어제, 나는 오랜만에 남편과 전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을 마셨다.


'막걸리를 마시면서, 이래도 되나? 그것도 거룩한 주일에?'


죄책감이 들었다.

술 마시는 행위를 정죄하기보다는 술을 마신 이후에 일어나는 죄의 현상들을 보게 됐다.

술 마시기 전에, 남편을 사랑했던 내가,

술 마신 후에 남편을 정죄하고 판단한다.

어찌 보면, 죄는 계속 다스려져야 하고, 밟혀야 하는 대상인데...

어쩌면 술은 죄가 들어오는 통로를 여는 길목이 되는 거 같다.



"자기야~ 이제 우리 술 그만 마셔야겠어!

아무래도 좋았던 우리 관계가 술로 인해 틀어지는 거 같아."


그렇게 허심탄회하게 말했더니,

남편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여준다.

고개를 끄덕여주는 남편에게 너무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거룩한 주일, 술 주님을 영접하고 난 후,

속 쓰림을 붙잡고 다시 한번 재점검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왜 하필, 오늘 묵상글은 '우리 몸이 성전이다'라는 글인지... ㅎㅎㅎㅎ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훈계하심에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부탁드리는데...


행여나 제가 올리는 글들을 통해,

저를 엄청나게 신앙이 좋고 거룩하게만 보시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

(어쩌면 저의 노파심일 수 있음을 미리 사죄드리며!)


난, 여전히 세상 미혹과 죄와 전쟁을 치르며,

주님 없이는 그 전쟁에서 절대 승리할 수 없는 아주아주 연약한 존재임을!


그리고 그런 나를 긍휼히 여겨서 기도해주십사!

지면을 통해 부탁드려본다.


'막걸리~ 한 잔~'


영탁의 막걸리 한 잔을 거나하게 뽑아댔던

어제의 나의 모습은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전에 흔히 술자리에서 봤던 나의 옛모습이었다.


손쉽게 돌아가는 옛모습에 씁쓸한 하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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