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탐가 Apr 27. 2022

나는 온라인으로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

# 브런치 작가의 시작!


난 드라마 작가였다.


작가였다는, 눈치채셨다시피 과거형이다.

내가 굳이 과거형을 쓰는 이유는 현재, 드라마를 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드라마 작가를 그만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난, 여전히 열심히 기획을 하고, 시놉시스를 쓰고 있으니까!


사실, 드라마 작가로서 가장 힘든 지점은 방송이 편성되지 않았을 때의 허탈함이다.

보통 하나의 드라마를 준비하기 위해 최소 6개월에서 1년의 프리 프로덕션 단계가 필요하다.

나를 포함, 다른 드라마 작가들은 정말 열심히, 미친 듯이 글을 쓴다.

손목이 나가고, 허리가 나가고, 심지어 내장 기관들이 망가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감당하며 글을 쓴다.


그렇게 열심을 내며, 준비했는데…

문제는 편성이 되지 않고 엎어지는 데 있다.

1년의, 혹은 더 긴 기간의 수고가 일순간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


그 순간을 버텨내는 것은 참으로 힘겹다.


엄청난 공허함이 몰려온다.

미칠 것 같은 분노가 솟구친다.

작가의 노력과 상관없이 엎는 것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긴 시간의 투자에 비해, 엎어지는 것은 너무도 짧다.


그렇게 나는 열심히 일했는데,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결국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한,  한량한 작가가 되고 만다.

문제는 나의 수고가 헛됨으로 돌아왔을 때…

그 순간과 그 이후의 시간을 견뎌낸다는 것이 가장 힘들다.


그렇게 나는 출판사를 차렸다.

그리고 망했다.

많은 돈을 까먹는 것으로 대가를 지불했다.


처음에는 1인 출판사로 내가 쓰는 모든 글들을

책으로라도 발행해서 콘텐츠(열매)로 만들어내고 싶었다.

선택받는 입장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입장에 서고 싶어서!


하지만, 결국 난 작가도 아니고 사업가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가

엄청난 손해를 보고 문을 닫아야 했다.


그저, 내가 쓴 글들을 세상 밖으로 내 보내고 싶은 열망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렇게 좌절하며, 작가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2년 정도… 글쓰기를 아예 멈추었다.


작가라는 것이 써야 하는 사람의 정체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난, 결국 작가라는 정체성을 상실한 채 살아가야 했다.


열심을 내며 달려왔던 사업으로 인한 누적된 피로가 회복될 즈음,

나는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무슨 글을 써야 할지 잘 몰랐다.

그동안 쭉 써왔던 드라마는 여전히 열매를 맺지 못할 수 있는 영역이었고

나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두려움이 컸다.

다시, 쓰지 못할까 봐! 다시 선택받지 못할까 봐!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근데 나는 무슨 글을 쓰고 싶은 거지?'


드라마라는 툴 말고, 그 안에 담고 싶은 내용이 뭐냐고?


그릇 말고, 그 내용물!

정말, 콘텐츠!


그동안 나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글에만 집중하고 맞춰서 쓰는 것에 훈련돼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지만,

작가라고 부를 수 없는 나였다.


정말, 1년 정도를 고민했던 거 같다.

그리고 내린 결론, 드라마를 버려보자!

내가 정말 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질 때까지, 드라마를 버려보자!

드라마 작가가 아니라, 그냥 작가가 돼보자!

그렇게 브런치 작가가 됐다.

브런치 작가의 시작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스토리텔링이 빠진 채, 그냥 일상에서 벌어지는 나의 사소한 일들을 기록했다.


독자수와 하트와 공유수와 상관없이(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그냥 내가 쓰고 싶은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소소한 글들을 쓰면서 나는 정말 편안해졌다.


지금까지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과 자유함!

그렇게 나는 온라인 글쓰기를 통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오다니, 정말 꿈만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아, 함께 익어가자꾸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