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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탐가 Oct 08. 2022

인생아, 함께 익어가자꾸나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김종환의 바램중에서-




임영웅이 미스터 트롯이라는 경연대회에 나와서

이 노래를 불렀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너무 좋아서.


그렇게 이 노래가 김종환 작사, 작곡에 노사연이 부른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됐고, 수차례 이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

그것이 나이 먹는 것이라니,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오십대의 나이가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하는데

나는 과연 하늘의 뜻을 알고 있나? 라는 질문앞에서 막막했다.


사업에 실패한 후

쓸데없이 나이만 먹어가고

이루어 놓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고

답답하고 힘든 시기였다.


사업가와 작가라는 타이틀 사이에 끼여 애매모호한 정체성.

여자와 아줌마 사이에 끼여 반백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들.

잘난척 할 것도 없고, 잘난 척 하고 싶은 것도 사그라들 즈음이었다.

그때, 내 나이 지천명을 막 지나가고 있었다.


'나이만 먹어가고 있구나!'


자학하고 있을 즈음, 이 노래를 만났다.

노래 한곡이 주는 힘!

그 힘은 놀라웠다.


'그래 나이를 먹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고 있는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 먹던 날이었다.

 



얼마전, 지인들과 함께 떠난 군산여행에서

가을 황금빛 들판을 바라보았다.

올해 들어 처음 마주 대하는 황금들판을 보며

'완전 익었네!'

하며 숙연해진적이 있었다.


곡식이 황금색 물결을 이루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으리라.

비 바람과, 폭우와 뜨거운 뙤약볕과 날아드는 벌레들과

그렇게 하루하루를 전쟁을 치러내 듯 견뎌냈으리라.


완연한 가을로 접어드는 분위기는 익어가는 인생을 떠오르게 한다.

나이가 드는 것하고 익어가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나이가 드는 것은 그냥 버텨내듯 사는 것이고,

익어가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하루 하루 깨달아가는 것이다.

그냥 나이 먹지 말고, 익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나에게 있다.




"할머니,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난, 익어가는 인생을 만날때마다 꼭 이 질문을 던져본다.


"삶은 계란같아."


"삶은 계란요?"


"그래! 깨어지기 쉬운 날계란이 서서히 달아지는 물속에 들어가

익어가는 거잖아."


"아~"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여쭤봤더니,

배운 것 하나 없어, 늘 무식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그럴듯한 이야기다.


"어머니,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어제 더 추워지기 전에 어머니와 데이트를 하며 나눈 대화끝에 내가 여쭤봤더니,


"돈이라고 생각해!"


"예에?"


으음~ 이건 조금 실망스러운 대답인걸!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요즈음에 아버지가 많이 아프시잖아. 그래도 내가 알뜰살뜰 아끼고 아껴서

현금을 모아놔서, 자식들한테 피해 안끼치고 내 힘으로 할 수 있잖아.

그게 엄청난 힘이고, 나이 먹으니 그거밖에 의지할 데가 없더라."


"아아~"


결국, 자식들에게 걱정 끼치기 싫어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이 담긴 대답이었구나!


어머니는 돈으로 익어가고

우리 할머니는 계란으로 익어가고

나는 무엇을 익어갈까?


그러다 문득 내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함께 익어갈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뒤늦게 원수에서 연인이 돼버린 초로에 접어든 남편,

늘 나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어주는 두 딸들,

인생 선배님으로 앞서서 길을 내시고 계시는 시부모님들,

그리고 나와 같은 곳에 시선을 두고 공감하며 나아가는 믿음의 가족들.


너무도 소중하고 귀한 사람들이 내 옆에 있었다.

난, 그들과 함께 익어가고 싶다.


어울어지고 또 어울어지면서!


그렇게 내 인생이 익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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