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사랑의 자발성

# 상처가 남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by 글탐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고전 13:4)
사랑은 미리 생각해 보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특성은 자발성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안에 표준으로 세워놓지 않아도 주의 영이 우리를 사로잡아 주관하시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표준에 따라 살게 됩니다.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면 어떤 특별한 감정에 끌린 것도 아닌데 주를 따르고 있는 자신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이는 내 안에 자발적인 참된 사랑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행한 모든 일들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본질이 판명됩니다. 사랑의 샘은 하나님 안에 있지 우리 안에는 없습니다. 따라서 자연적인 인간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입니다. 오직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 안에 넓게 부어질 때 비로소 그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있게 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오늘 묵상글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자발성과 글 안에 담긴 자발성이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기존의 통념대로 '하나님을 자발적인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묵상글에서는 저절로 되는 것이라 한다.

생각하고, 결단하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되어지는 것!

그 자발성을 말한다.

묵상글에서 말한 자발성에는 '나'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

'나'가 빠진 사랑... 그것이 가능할까?

'나'가 빠진 사랑... 대신 들어와야 할 것,

그것은 바로 사랑의 샘이신 하나님으로 공급받아야 하는 사랑이다.

'나'대신 꽉 채워져야 할 사랑, 하나님의 사랑!

그것이 바로 오늘 묵상글에서 말하는 자발적인 사랑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자발적인 사랑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사랑이다.

오히려, 인간이 사랑이라 지칭하는 것들이 있을 때, 방해가 되는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이기적인 폭력을 가하고 있는가?

사랑하니까, 내 마음대로 하고 싶고

사랑하니까, 너 잘대라고 하는 거야 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사랑하니까, 너는 내 거야 라는 이기적인 형태들도 나타나고,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만행(?)들은 사랑이라는 전제가 들어가서

또 얼마나 너그럽게 상대방에게 수용되길 원하는가?


결국, 그 사랑이 상대방 좋자고 하는 게 아니라 나 좋자고 하는 사랑이다.

잘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르시다.

일단, 하나님이 이기적인 헌신이 아니라 완전한 헌신이다.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거나, 바라는 사랑이 아니라 완전히 주는 사랑이다.

그것도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이다.


사랑이 난무하는 시대,

그래서 너무 빠르고 쉽게 인식되는 요즘의 사랑을 인스턴트식 사랑이라 한다.

인스턴트는 맛도 있고, 빠르게 먹을 수 있으나 그것이 쌓이다 보면, 인간의 건강에 치명타가 된다.

결국 먹는 것이 내가 된다는데

인스턴트 사랑은 결국 나나 상대방을 병들게 한다.

사랑에는 상처가 남으면 안 된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열매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랑의 상처들 때문에 아파하는가?


결국 인간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저, 이기적인 자아가 충돌하며 서로를 더 많이 사랑한다고 착각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발적이라 생각한다.


이제, 저절로 되는 자발적인 사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사랑은 사랑의 샘이기 때문에 마를 일이 없다.

우리가 아무리 퍼다 써도, 그 사랑은 무한공급이다.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사랑...

그 사랑을 주님께 공급받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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