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월 23일/ '염려'라는 불신앙

# 십자가 앞에 다시 서야 한다.

by 글탐가
목숨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 6:25)
장래에 대해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는 옮지 않을 뿐 아니라 불신앙입니다. 염려란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실제적인 부분을 돌보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불신 외에는 우리를 염려하도록 만드는 것이 없습니다. 당신은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넣어주신 말씀을 질식시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주님의 경고에 주목한 적이 있습니까? 마귀입니까? 아닙니다. 이 세상의 염려입니다.

불신앙에 대한 유일한 치료는 성령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우리의 염려는 과거나 혹은 미래가 대부분 차지한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의 염려는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로 시작되는 거 같다.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미래에 일어날 것 같은 염려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친구는 일부러 염려를 사서 한다고 한다.

도대체 왜?

알아봤더니, 염려를 하면 오히려 그 염려가 일어나지 않고 비켜간다나?!


참으로 염려스러운 생각이다.


나는 염려가 불신앙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결국 염려는 하나님을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의 싸움이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러 왔노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분이다.

그분 안에 있을 때 진정한 안식이 이루어진다.

그분은 우리의 평안을 위해 십자가게 못 박히신 분이시다.

그분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초대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전쟁이 없는 나라이며 진정한 평안이 있는 나라이다.


주님 안에서 평안한가?

결국 믿느냐 안 믿느냐의 전쟁이다.


염려가 될 때, 그 유일한 치료가 성령님께 순종하라고 한다.

그렇다면 성령님께 순종이 되지 않을 때 어떡하는가?

그때는 십자가로 돌아가야 한다.

십자가의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다시 바라보고 묵상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돌이키고 강건한 믿음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밖에 없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그렇다. 위의 찬양의 가사처럼 십자가 앞에 설 때만 우리 마음의 고통을 사라진다.

염려하는 마음이야 당연히 사라지지 않겠는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