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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8일/ 질문 없는 계시

# 이심전심, 하나님과 나 사이.

by 글탐가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요 16:23)
당신이 잘 이해할 수 없는 어두운 것들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마음을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당신은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주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이루어가신다는 것을 분명히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마음 상태는 실제로 요한복음 14장 1절처럼 될 것이고, 더 이상 질문할 것이 없어집니다. 이상하게 당신과 하나님 사이에 뭔가 끼어들면 당신의 지성으로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당신 속의 성향 가운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찾으십시오. 당신의 성향이 예수님의 생명에 기꺼이 항복하면 당신은 아버지와 더 이상의 거리를 느끼지 않게 되며 완벽하게 다 이해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당신을 아버지와 하나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이심전심이라는 말이 있다.

그냥 마음으로 통하는 사이.

그냥 눈빛으로 통하는 사이.

말을 안 해도 서로의 뜻을 알 수 있는 사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그런 관계가 되면, 사실 그냥 끝난 거 아닌가?

하지만 비록 예수님을 만남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그리고 하나님 나라, 천국을 보아 알았지만,

심지어 천국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 삶에 나타나기까지는 어렵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이유는 내 속에 존재하는 죄성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자존감 낮은 마음과 교만과 합리화와 심지어 판단과 정죄 등

삶을 살아가는 내내 육신 가운데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사실, 방법이 없다.


일단 인정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무수히 많은 죄성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겸허히 주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

나의 죄성이 하나님과 하나됨을 방해하고 있다면 철저히 주님 앞에 나아가 회개해야 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에게는 반복되며 나타나는 죄성이 있다.

그것은 교만을 가장한 겸손이다.

겸손한 척 하지만 결국 그 겸손 안에는 내가 주인 됨이 숨어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겸손에는 자기 비하가 숨어 있다.


자기를 낮추는 것은 겸손이 아니다.

사도바울처럼 세상 앞에 나아가서는 '하나님 앞에서 양심으로 꺼리길 것이 없다'는 담대한 선포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 앞에서 주눅 들고 하나님 앞에서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대든다.


'나한테 왜 이러시냐고?'


참, 어불성설이다.


한동안 당당했던 나는 요즘 자존감 낮음을 가장한 교만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자존감이 왜 낮아졌는가?

결국 하나님보다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서이야.

하나님께 집중한다고 하면서 결국 인식하는 것은 세상의 인정이다.

"결국 욕먹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닙니까?"


어제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들었던 말이다.


"그러네요. 나, 진짜 욕먹기 싫어하네요."


세상에 욕먹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마는

욕먹는 것이 두려워서 마땅히 할 바를 하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꼴'이 된다.


아~ 한숨이 나온다.

전반적으로 나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비쳐진다.

자존감이 낮아져서,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다 그저 그렇게 느껴진다.

조금 심각해질 수 있는 상황에 하나님은 경고등을 발동하신다.


"걱정마라! 너랑 나랑은 이심전심이니까!"


고민이 짙어질 즈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이 반갑고 감사하다.


"그래요. 주님. 우리는 말을 안 해도 알 수 있는 사이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오늘도 자존감 낮아진 나를 엎어 패대기 치고

하나님의 자녀로 정체성을 회복시키는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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