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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네, 그렇지만...

# 한계를 짓지 말자

by 글탐가
주여 내가 따르겠나이다 마는... (눅 9:61)
당신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려고 매번 일어나지만 마지막 순간에 꼭 뒤로 물러서게 됩니다. "네 그렇지만... 만일 제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저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주를 믿는 자들에게 자연인이 스포츠 세계에서 보여주는 그러한 과감한 정신을 요구하십니다. 사람이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려면 모든 것을 걸고 과감하게 나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상태에서도 그동안 상식을 초월해 주님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과감히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순간 당신은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이 상식만큼이나 확실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나는 예수님을 믿어. 믿는데..."


"나는 예수님을 알아. 아는데..."


그런데...

그런데가 붙으면 반드시 뒤에 부정적인 말을 따른다.

그리고 앞에 던져진 긍정적인 말을 전복시킨다.

긍정적인 말이 순식간에 엎어지며 부정적인 것이 되는 말, 그런데!


"아, 나는 그 일을 하고 싶어. 그런데... 아직 준비가 안됐어."


그런데라는 말은 뒤에 반드시 합리화나 핑계가 따른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하듯, 핑계를 대자면 우리는 숱하게 핑계를 만들 수 있다.


오늘 묵상 말씀을 읽으면서 나는 점검해보았다.

요즘 나는 '그런데'를 사용하는가?

완전히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빈도가 어느 정도인가?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요즘 그 빈도가 잦은 거 같다.

정확하게 그런데라는 말은 아니지만 요즘 내 마음에는

'이 정도면 됐지 않나?' 한계를 긋는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이 정도면 훌륭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거 아닌가?

모든 공예배 참석하고, 십일조 하고, 감사 헌금하고, 봉사도 적당히 하고...'


그러던 어느 날, 설교말씀 중에 목사님께서 마치 내 생각을 읽은 듯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다른 사람들보다 이 정도면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다시 점검해보십시오. 왜 사람이 기준입니까? 그것도 왜 나보다 못한 사람이 기준입니까?

기준을 잡으려면 나도다 잘하는 사람이 기준이 돼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사람을 기준으로 삼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기준이 돼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셨습니다. 그 기준으로 본다면, 이 정도면 됐지! 그 한계선을 그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도 고백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을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2~14)

한계가 있는 경우와 한계가 없는 경우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한계가 있는 경우는 멈추지만, 한계가 없으면 멈추지 않는다.

한계가 있는 경우는 그 끝을 내가 정하지만

한계가 없는 경우는 그 끝을 예수님이 정하신다.


우리에게 반드시 육신의 죽음이라는 정해진 끝이 있다.

하지만 그 죽음을 결정짓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한계를 짓지 않고, 열심을 내서 주님 닮아가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달려가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다.


아~ 요즘 다시 돌이켜야 할 일들이 많은 거 같다.

한계를 짓지 말고,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하루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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