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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성도입니까?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by 글탐가
랍비여 어디 계시 오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요 1:38~39)
"아, 나는 도저히 성도라고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무의식적인 신성 모독입니다. 문자적으로 이 말은 "나는 너무나 약하고 가능성이 없기에 십자가의 속죄로도 나를 어쩔 수 없어"라는 의미로, 당신을 성도로 만드신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입니다. 왜 자신을 성도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이는 당신이 성도가 되고 싶지 않거나 당신을 성도로 만드신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의 죄를 용서하지 마소서!"


울며 불며 주님께 매달리고 회개하고 있을 때 나는 주님께 나의 죄를 용서하지 마소서!라고 말했다.


"정말 너를 용서하지 않기를 원하느냐?"


너무 세밀하지만 진지하게 들리는 주님의 음성에 놀라서 나는 손사래까지 치며,


"아니요. 주님. 저를 용서하기를 원하나이다."


초신자였던 그 당시, 나는 주님 앞에서 잘난 척하고 싶었던 거 같다.


'나의 죄를 이렇게 깨닫고 있습니다.'


이 마음을 아주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하나님 앞에 내놓고 싶었던 거 같다.

하지만 그 결과 내가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은 너무 직설적이어서 놀랐다.


"정말 너를 용서하지 않기를 원하느냐?"


이 직설적인 질문에 나는 진짜 속마음, 정직한 영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다.

너를 용서하지 않기를 원하느냐?라는 하나님의 질문이 어찌나 두려웠는지 모른다.

그냥, 본능적으로 덜컥하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훗날 왜 그 질문에 내가 본능적으로(영으로 반응하는) 두려움을 느꼈는지 알게 됐다.


"정말 너를 용서하지 않기를 원하느냐?"


라는 말을 직역하면


"너, 정말 지옥 가기를 원하느냐?"


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에 대해 더 깊게 알면 알수록 알게 됐다.

하나님께 용서받기를 거부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오신 목적 그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신성모독이다. 예수님을 이 땅 가운데 보내신 것을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도 똑같으니까.


그 당시에는 나의 기도와 하나님의 음성이 '웬 코미디냐?'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 안에 감춰진 엄청난 의미를 깨닫게 되고 난 이후로는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셨는지 알게 됐다.


저는 죄인이니 저를 용서하지 말소서라는 말은 인간의 시선으로 볼 때 엄청 의로워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선에서 바라볼 때는 어마어마한 죄다.

그것 자체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부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 자체가 하나님과 관계를 깨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깨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화목 제물로 하나님의 독생자를 이 땅

가운데 보내셨는데 우리가 용서를 받지 않으면 그 뜻을 이루실 수가 없다.

그 일은 근본적으로 주님의 품에, 하나님 아버지 품에 갈 수도 없게 되는

즉,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두려운 일이다.


이제 막 거듭나서 주님을 믿기 시작한 내가 무지해서, 혹은 나의 의에 충만해서 하나님 앞에 저지른 만행(?)을

하나님은 아주 직설적인 화법으로 말씀하시며 나의 생각을 교정시켜 주신 것이다.


용서받아야 한다.

용서받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로 입성하는 초입단계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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