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일/ 개인적 죄에 대한 집중

# 죄가 보여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by 글탐가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사 6:5)
자신의 죄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깨닫게 되는 경험은 위대한 성자에게나 가장 작은 성자에게나 무서운 죄인에게나 가벼운 죄인에게나 한결같은 것입니다. 이 경험의 첫째 단계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저는 제가 어디에서 잘못된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어떤 정확한 죄를 지적하실 것입니다. 죄성이 집중적으로 드러날 때에는 그 죄성을 제거하기 위해 정결케 하는 불을 그곳에 대야 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죄인인데, 죄가 드러나 밝혀진 죄인이 있고, 죄가 숨겨져 드러나지 않은 죄인이

있을 뿐입니다."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설교 중에 하신 말씀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우리 모두는 죄인인데, 자신의 죄를 깨달은 죄인이 있고, 또 깨닫지 못한 죄인이 있다.

죄도 알고 지은 죄가 있고, 모르고 지은 죄가 있다. 모르고 지었다고 죄가 아닌 것이 아니듯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했다고 죄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


"죄가 보여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어느 날, 우리 교회 목사님께서 설교말씀 중에 하셨던 말씀이다.

그런데 죄가 보여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영접하기 위한 입문 단계다.

죄가 보여져야 회개할 수 있고, 그래야 구원받을 수 있다.

묵상글을 쓰며 계속해서 반복할 수밖에 없는 진리다.


천국복음의 시작이 회개임을 수차례 언급했다.

우리에게 죄가 보여지고, 알아지고, 깨달아지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다.

죄가 알아짐은 괴롭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감사해야 한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자신이 죄인의 괴수임을 알게 되는 거 같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신앙이 깊어질수록, 인간의 마음속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고

악만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날마다 주님 앞으로 무릎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알게 된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죄인인 우리의 결과는 사망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 사망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보내진 선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께서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으로 우리는 영생을 선물 받았다.

그러니 죄가 보여지고 깨달아 알아지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영생을 선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것이 아닌가?

"아이고, 얘. 집을 며칠 동안 비웠더니, 왜 이렇게 집에 가고 싶냐? 거기 가면 사람도 없고,

금은보화도 없는 빈집인데, 왜 이렇게 우리 집에 가고 싶은 지 이상하다."


꼬리뼈에 금이 가서 우리 집에 계신 어머니가 오늘 아침밥을 먹으며 하신 말씀이다.

그 얘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천국이 그렇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 천국이 꼭 집과 같은 곳이에요. 집에서 떠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잠시 천국에서 떠나

이 땅에 와 있는 건데... 평상시에는 잊고 살다가, 이렇게 힘든 일이 생기면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듯이

우리도 힘든 일이 있을 때, 아, 그냥 천국에 가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들잖아요. 본향의 집이 진짜 내 집이니까

그 집이 이유도 없이 그립고, 가고 싶은 거예요. 천국이 우리 진짜 집이니까, 어머니도 집에 가고 싶다~이런 마음처럼 천국에 가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들면 좋겠네요. 헤헤"


으음? 말하다고 보니 조금 이상하긴 했다.

천국에 가고 싶다! 왠지 빨리 돌아가셔라! 이런 뜻으로 왜곡해서 받아들이시지 마시길!


난, 천국 본향의 내 집에 가고 싶다!

지금 내 삶이 고난이거나, 환난 가운에 있어서가 아니다.

생각보다 난, 꽤 평안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이유도 없이 가고 싶은 어머니의 집처럼,

특별한 이유가 없지만 그냥 가고 싶은 내 진짜 집이 그곳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목수로 오신 이유!

천국에 우리 집을 짓고 계시기 때문이라는데, 오늘 어머니의 집이 그립다는 말 덕분에

다시 한번 천국의 집을 사모하는 날로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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