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 주님을 진정 사랑합니까?

# 우리는 사랑을 할 수 없다.

by 글탐가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 14:26)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분께 사랑의 종으로 헌신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우리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향해 헌신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령께서 주를 향한 열정적인 사랑을 보여주지 않으시면 이 땅의 그 누구도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사모하고 존경하고 경외할지라도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사랑하는 유일한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넓게 비춰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감각과 모든 성품을 다 휘어잡아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 뜨거운 헌신을 하게 하십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너무 지쳤습니다. 그 사람은 정말 구제불능 예요. 난, 이제 그 사람이 지옥으로 떨어져도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


어느 날,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던 믿는 후배가 지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그 친구 얼굴에서 지친 기색과 짜증이 묻어 나왔다.

전도를 하다, 상대방이 욕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얻어먹을 거 다 얻어먹고!


밥까지 사고, 욕까지 먹었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미워?"


"당연이 밉죠. 꼴도 보기 싫어요."


"그 사람을 사랑해?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으니 전도하고 싶었을 거 아냐?"


사랑이라는 말에, 그 후배의 얼굴이 붉어졌다.

방금 전에 밉다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기 때문에 감히 사랑한다고 말하기가 버거웠던 모양이다.


"제가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이기나 한가요?"


오호~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대답이었다.


"전도를 하다 보면 제일 먼저 부대끼는 것이 바로 이 문제예요. 제 안에 사랑이 없더라고요."


"에이~ 그건 너무 자학아냐? 사랑이 없는 게 아니라 부족한 거겠지."


"아녜요. 정말 사랑이 없어요."


"그럼 전도는 어떻게 해?"


"그러니까, 이렇게 부대끼죠. 헤헤"


부끄러운 듯 웃는 그 친구를 보며, '참 성숙한 친구구나!'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후배의 말처럼, 우리는 사랑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사랑은 배타적이라기보다 이기적이다.

다른 사람을 위한 헌신도 결국 들여다보면 나를 위한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도 결국 들여다보면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이다.

우리의 내면을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결국, 인간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가 어렵다


'우리가 주님을 사모하고 존경하고 경외할지라도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묵상글에 쓰인 말처럼, 우리가 그분을 사모하고 존경하고 경외할지라도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말의 진의는 인간은 사랑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결국 우리가 그분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령으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진정한 사랑의 주체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인

성령에 힘입어하는 사랑만이 진짜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듯 하나, 우리가 하는 사랑은 결국 가짜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령의 충만함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 충돌하기 시작한다.

말 한마디, 표정까지도 걸림돌이 된다.

아무리 사랑하는 남녀라도 그 사랑이 온전히 지속되기란 불가능하다. 게다가 우리의 감정 기복에 따라

그 사랑은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지속된다. 그 사랑은 변궤하지도 않는다.

영원히 지속되고 변화되지 않는 유일한 사랑, 그 사랑만이 진짜다.

결국 후배의 고백처럼 우리는 사랑이 없는 존재다.

그 빈 그릇에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 흘러넘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나도 살고, 상대방도 산다.

주님의 사랑은 결국 생명으로 이어진다.

주님의 사랑이 십자가 사건으로 이어졌고, 결국 우리를 살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도도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기도해야 한다.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흘러넘쳐, 전도대상자에게 흘러가기를!

그 후에 따라오는 핍박은 기쁨이 된다.

내 안에 흘러넘치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도대상자의 몫이기에!

그리고 결국, 나는 그 사랑으로 인해 생명력 넘치는 하루를 살아낼 수 있기에.

그리고 더불어, 하늘의 상급이 쌓이는 한 날을 선물 받았으므로!

이래저래 유익한 하나님의 일로 전도를 받아들일 수 있으니!

그저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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