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모독에 대한 대처

# 믿는 자들은 특별해야 한다.

by 글탐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마 5:39)
당신은 예수님의 성품을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오직 그분이 당신 안에 계신지 아닌지가 문제입니다. 성도가 받는 모독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할 수 없는 향기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가 우리 주장을 하는 매 순간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께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독과 오해와 억울함을 그냥 당하면 우리는 주님께서 해를 당하시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의미가 주님의 남은 고난에 동참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이지 나 자신의 영광이 아닙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저 사람은 크리스천이 왜 저래?"


똑같은 일을 해도 일반인이 하면 이해를 받고, 크리스천이 하면 비난을 받는다.

왜일까?

아시는 목사님께서 이를 두고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세상이 크리스천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것이니까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는 인식과 기대를 갖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그 인식과 기대를 만족시켜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고요."


오래전에 들었던 그 얘기가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시각의 전환 때문이었다.

예전의 나는 "아, 왜 우리한테만 그래?"라고 항거했을 일을 목사님의 얘기로 "아, 우리가 특별한 사람들이라 그래."로 전환되는 계기가 됐다.


믿는 자들은 특별하다.

특별하다는 것은 그만큼 주목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 세상에서 말하는 특별함과 성경에서 말하는 특별함을 다르다.

세상은 '주인공은 나야 나!'를 말하지만 성경은 '주인공은 예수님이야.'라고 말한다.

세상은 '한 대 맞으면 두 대를 때리라'라는데 성경은 '한 대를 맞으면 두 대를 맞으라 한다.'

그것이 십자가의 수난에 참여하는 길이라니!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답답한 일이다.


젊은 날에, 미션이라는 영화를 봤다.

엔리오 모리꼬네의 영화음악으로도 더 유명해진 영화였다.

장엄한 폭포와 깊은 산새를 지나, 원주님 과라니족의 마을로 선교 활동을 위해 들어가는 가브리엘 신부의

험난한 여정의 시작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맞나? 너무 오래전에 봐서, 틀리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그 당시, 영화의 장면들은 뇌에 각인되었지만 놀랍게도 나는 그 영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 나는 크리스천이 아니었고, 종교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무신론자였다.

그리고 젊지 않았는가? 도대체 이 영화는 뭘 말하고 싶은 거지? 끝이 왜 저렇게 끝나는 거야?

싸우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나오던 나였다.

미션 포스터(네이버 영화)
우리는, 죽음의 경계 앞에 서 있다

18세기, 극단의 시대.
원주민 과라니족의 마을로 선교활동을 온
‘가브리엘 신부’와 살인 복역수 ‘멘도자’는
포르투갈 영토에 편입되어 죽음의 위기에 처한 원주민들을 목격한다.

무력 VS 비폭력
이들을 지키기 위해 서로 다른 선택을 감행하는 두 사람,
과연 두 사람은 그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네이버 영화에서 발췌-


놀랍게도 훗날,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내 주위 사람들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세상적인 방법으로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난리를 치고 다니니,

기이한 일이로다~ 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나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문득문득 미션이란 영화가 떠올랐다.


젊은 날에 본 영화가 나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된 듯, 부분적으로 배우들의 표정,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아 그때 이런 이야기였구나! 무릎을 친 적도 있었다.


'율법으로 대응할 것이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대응할 것이냐?'

라는 주제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때, 무엇이 옳다 그르다로 답을 내려주지 않은 채 논쟁거리를 제시해 준

영화이기도 했는데...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서 율법은 죄를 깨닫게 되는 역할을 하고, 그 죄를 깨달음으로 그 죄를 사함 받게 하신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알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겨우, 미션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이해가 됐다. 크리스천이 된 나의 시선으로 미션을 다시 봐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믿음을 가진 각 사람에게 용서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신다.


"주님! 제발, 원수를 사랑하라! 는 말을 하지 마소서! 나는 주님이 아니잖아요."


나는 한때 이런 기도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기도가 바뀌었다.


"주님. 원수를 사랑할 힘이 제게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십니다. 내 안에 오직 주님으로 가득 차게 하소서. 그리하여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하소서!"


오늘 모든 글들은 잠언 말씀으로 그냥, 정리되는 듯하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 (잠언 25: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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