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자발적 순종

# 참된 순종이란? 사랑을 전제로 한다.

by 글탐가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요 13:13)
순종은 동등한 관계에서만 가능합니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서 참된 순종이 가능한 것이지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되면 참된 순종이란 그 의미가 사라지게 됩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 10:30). 그분은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아들의 순종은 구속주로서의 순종이었습니다." 아들이 되기 위해 순종한 것이 아니라 아들이기 때문에 순종하셨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신앙의 초창기 시절, 기도 중에 '절대 순종'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하셨다.

나도 모르게 기도 중에 '절대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됐는데

그때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신이 나셨는지 내 삶의 소소한 문제에서 순종할 일들을

많이 만드셨다.


글을 쓰기 위해 작업실로 출근하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갑자기 마음 가운데 불현듯 <택시를 타라!>라는 마음이 들었다.


"택시요? 코 앞이 작업실인데?"


바로 그때, 택시가 다가와 내 앞에 섰다.


"오잉?!"


잽싸게 택시를 잡아 탔다.


"어디로 모실까요?"


택시 기사가 묻자, 순간 나는 멈칫했다.

어디로 갈지 몰라서 순간 당황한 것이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주님 택시를 탔어요. 어디로 가요?"


<교회!>


"기사님, 00교회로 가 주세요!"


택시는 우리 집 앞에 있는 교회로 향했다.

작업실과 걸어서 30분 정도 되는 거리이니, 10분 만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려 또 갈바를 물었다.


"교회에 왔습니다. 그다음 어디로 갈까요?"


<지하 예배당으로 가서 기도해라!>


'절대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기도 중에 서언했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마음 가운데 들리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했다. 나는 지하 예배당으로 가서

기도를 시작했다.


그 외에도 순종과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와 다양한 훈련들이 많았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하고, 어찌 됐든 나는 성령께서 친히 훈계하시어 가르치시는

순종 훈련을 받았다.

너무 많은 일들과 부딪침과 성품이 모난 곳이 깎여지는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놀랍게 이 시간들을 통해서 내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참된 순종이란? 사랑을 전제로 한다.'는 것!


순종을 훈련하는 시간들을 통해, 주님께서는 나에게 강압적인 것이 하나도 없었다.

기도 중에, 성령의 감동에 의해 부드럽게 나를 이끄셨다.

그리고 나의 모난 성품으로 순종하기 어려웠던 문제들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그런 시간들을 통해 알 게 된 것!


'참된 순종이란? 사랑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심으로 순종하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은 황당한 음성으로 순종을 요구하시지 않는다.

잠시 동안, 집중된 순종의 훈련을 통해 나의 주권이 주님께로 이양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주권을 내어드린 것은 내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주권을 다 내어놓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듯이

나 역시 주님을 사랑함으로 내 인생의 주권을 주님께 드렸다.


주님의 사랑의 크기와 무게에 비할 바 안 되는 보잘것없는 나의 사랑도 주님께선 기쁘게 받으신다.

그리고 그 사랑을 흠양하신다.


"주님! 사랑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으로 시작되는 한 날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