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의탁할지어다 (벧전 4:19)
예수님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성도는 다른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해 힘 있게 자라나게 하고 성숙하도록 돕는 자입니다. 우리에게 선을 행하는 자들은 우리를 동정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동정은 우리 믿음의 성장을 방해합니다. 오직 주님께 가장 가까운 성도들 외에는 다른 성도들을 연단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성도들의 동정을 받아들인다면 그로 인해 드는 생각은 '이런, 하나님께서 나를 거칠게 다루시는구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자기 연민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시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엄중히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다.
이 이야기는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겠다고 하는 예수님께 죽지 말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 그리 큰 잘못이기에
예수님께서 사단아 물러가라!라는 말까지 하실까?
세상적 기준으로 성경을 바라봤던 초창기 시절에는 나는 정말 베드로가 의롭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더 십자가의 죽으심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알게 되면서, 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야단치셨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오신 목적은 단 하나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 가운데 보내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죄에서 사함 받는 역사가 일어난다.
그런데 그 유일한 하나님의 일을 베드로가 성취되면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죄는 곧 사단을 의미한다. 죄(사단)에서 구원할 그 십자가 사건을 말리는 주체는
오직 사단뿐이다. 그래서 베드로 안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을 향해 예수님께서 꾸짖으신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단어가 들어왔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신 것은 단순히 십자가의 죽으심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부활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부활을 믿지 않았다면, 부활이라는 의미가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다면
당연히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 반대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히 예수님은 부활의 승리에 대해 언급하셨다.
우리는 십자가의 죽으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십자가 죽으심 이후에는 부활의 승리가 있다.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서 죄에서 승리하시고 다시 사신 것이다.
우리 삶(인생) 역시 마찬가지가 돼야 한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 생명으로 이 땅 가운데 승리하며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역사가 우리 삶에서 나타나야 한다.
오늘도 주님의 부활하신 승리의 역사가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