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홀로 서 있을 때
# 더 깊이 만나는 시간 속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왕하 2:12)
요단에서 홀로 서 있음: 요단은 아무도 당신과 사귀는 사람이 없고 당신 대신에 책임을 질 사람도 없는 고독한 장소를 의미합니다.
여리고에서 홀로 서 있음: 여리고는 당신이 당신의 엘리야가 위대한 일을 행했던 것을 목격했던 장소입니다.
벧엘에서 홀로 서 있음: 당신의 벧엘에서 당신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게 되지만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지혜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 진실하게 서면 주님께서는 주의 진리로 당신의 삶을 붙드셔서 거룩한 산 제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문득, 엘리사가 홀로 서 있던 세 곳의 원어가 궁금해서 찾아보게 되었다.
놀랍게 이 세 곳의 장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잠시 나눠보고자 한다.
요단은 야르덴이란 어원을 갖고 있는데 그 어원이 인도 아이라어이면 '영구한 강'을 의미한다.
그리고 서부 셈족어의 어원을 따라가면, 그것은 '내려가다.' '내려가는 자'라는 의미가 된다.
흔히들 요단강을 건넌다 하면 사망의 강을 건너 삶과 죽음을 나누는 상징적인 강으로 사용된다.
자, 그렇다면 요단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은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아 이 땅 가운데 내려오신 분이시다.
그분은 천국(육신의 죽음 이후 갈 수 있는 영원무궁한 나라)에서 인생(삶)으로 이 땅 가운데 태어나셨다.
한마디로 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이다.
예표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 만나도 예수님을 상징하듯이 어찌 됐든 예수님은 영원한 나라 천국에서 요단강을 건너 이 땅으로 내려온 자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그분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중심에 서 있다.
요단강은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으로 나뉘는 강이기도 하다.
예수를 믿으면 요단강 건너 천국에 가는 것이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요단강 건너 지옥에 가는 것이다.
영구한 강에서 나뉘는 영원한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의 기준이 예수님인 것이다.
여리고는 예리호로 '향기의 장소'를 의미한다.
여리고는 세상을 의미한다. 이곳은 구약성경에서 종려나무의 성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여리고의 위치는 지진, 전쟁, 기타 참화로 늘 변화되는 장소였다.
엘리사가 쓴 물을 단물로 만들어(왕하 2:19~22) 이적을 행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여호와께서 주기로 약속한 장소(수 6:1~3)이며, 실제로 여호수아는 이곳을 함락했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소경을 고쳐주시고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한 장소이기도 하다.
여리고는 세상에서 기적과 이적을 행하시며, 구원을 이루실 세상을 상징한다.
그곳에는 지진과 전쟁과 참화로 늘 변화무쌍한 장소이지만 결국 그 땅 가운데 예수님은 화평과 화목의 희생제물로 평강의 왕으로 오신 것이다.
벧엘은 베드엘로 '하나님의 집'을 의미한다.
야곱이 처음으로 하늘문이 열리며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꿈속에서 보고 그가 베고 잔 돌들로 기둥을 세워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보인 곳이라는 의미를
갖고 벧엘이라 칭한 곳이다.
엘리야를 떠나보낸 후에 엘리사가 홀로 있었던 이 장소들은 모두 예수님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자로, 우리에게 영원한 강을 건너 생명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상에 빛으로 오시어, 죄가 만연한 세상을 향기 가득한 종려나무(성전을 짓는 데 사용되는 나무) 성으로 바꾸신 분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눈에 보이는 성전을 부수고, 사흘 만에 성전을 다시 재건하시러(부활) 오신 분이시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집으로 사용될 권리를 되찾아 주신 분이시다.
그렇다면 엘리야가 요단과 여리고와 벧엘에 왜 홀로 서 있어야 했을까?
이는 모든 신앙은 자신만의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중대한 메시지가 들어가 있다.
엘리야(스승)에 의존하던 엘리사가 홀로 되던 그때,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의 역사가 더 강력하게 나타난다. 엘리야의 하나님이 있듯이 엘리사의 하나님이 있으시다. 우리도 각자의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구원은 개별적인 것이다. 부모님이 신앙이 좋다고 절대로 그것이 내 신앙은 아니다. 부모님이 믿는 다고 그 믿음으로 내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외롭다고 느껴지는 지금,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것이다.
그 부르심에 주저하지 말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우리 모두의 인생 가운데 있기를 기도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는 시간이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