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은혜의 샘물

# 생수의 근원 되신 예수님

by 글탐가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는 생수의 강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 흐르실 수 있도록 샘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사해 같아서 언제나 받기만 하고 절대로 나누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주 예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확실하게 받기만 하면, 주님은 우리를 통해 생수의 강을 흘러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차고 넘치도록 주지 못하시는 이유는 그만큼 주님과의 관계에 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당신과 예수님 사이에 거리를 만드는 뭔가가 있습니까? 그분을 믿는 믿음을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까? 없다면, 예수님께서 당신으로부터 생수의 강이 흐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어떤 축복이 전달되는 것도 아니요 어떤 경험도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는 생수의 강입니다. 근원(예수님)에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당신의 믿음과 그분과의 관계를 잘 지키십시오. 그러면 메마름도 없고 죽음도 없는 가운데 끊임없는 생수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흐를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언젠가 정읍에 여행을 갔다가 그 동네 생수의 근원인 샘터를 보게 됐다.

솟아오르는 샘물은 한없이 맑고 투명했다.

나는 한참 동안 솟구쳐 오르는 생수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디서 저렇게 무한 공급되는 걸까? 저곳의 근원지는 어디일까?'


그때 본 샘터가 잊히지 않아서인지

성경 속에 우물가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그때 여행지에서 봤던 샘터를 떠올린다.

설교 말씀 중에 우물가에서 만난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신랑 신부가 된다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의 원천인 주님께서 바로 우리의 신랑 되시고, 그분이 바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우리의

생명수가 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언젠가 나의 의에 충만했을 때,

나는 나의 우물에서 바가지를 들어 물을 길어내며 퍼올렸다.

박박 소리가 나도록 바닥이 드러나자 나는 더 이상 나에게 길어 올린 물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때 널브러졌다. 그리고 낙망했다.


"주님, 저는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그 고백이 있고 난 후, 바닥이 난 나의 우물이 깊은 곳에서 다시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 생수의 근원지는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셨다.

퍼올려도 퍼올려도 끝없이 흐르는 생수의 근원.


조금 더 나아가자면, 사실 우리가 퍼올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생수의 근원이 차고 넘쳐흐를 때까지, 우리는 잠잠히 주만 바라보며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드디어 그것이 흘러넘칠 때, 우리의 힘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이 모든 것,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찬양이다.

찬양(할랄)의 의미에 '자랑하다'라는 뜻이 들어가 있다.

우리는 주님을 자랑해야 한다.

그 자랑에 우리의 것을 섞으면 안 된다.

그저 순전하게, 순수하게 하나님만 자랑하면 된다.


그것이 바로 찬양의 곡조다.

그것은 바로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성령)로 충만히 흘러넘칠때만 가능한 일이다.


오늘도 주님으로 가득 흘러넘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하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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