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 의지의 순복

# 구원, 헌신, 그리고 죽음

by 글탐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요 17:4)
마음과 생각을 번민케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내게로 오라"는 의지를 향한 부름입니다. 그 부름에 자원해서 가는 것입니다.

우리 상황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주님만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순복이란 예수님께 관심을 끌지 못한 것들이 당신에게도 전혀 관심이 될 수 없을 만큼, 주님의 죽으심과 함께 예수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내어 맡긴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내어 맡긴 후의 모든 삶은 오직 하나님과의 계속되는 사귐을 열망하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오늘 묵상글에서는 순복을 세 가지의 의미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첫째, 구원을 위한 순복.


우리의 의지를 주님께 순복 한 이후에 구원의 의미가 있다.


나는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주권 전쟁이 시작되었다.

나의 삶의 모든 영역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순복 하게 하는 시간들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나의 주권에 대한 의지를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훗날, 알게 된 것은 주권에 대한 의지를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주님을 신뢰하고 믿는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주님은 믿어야 나의 주권을 내려놓을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상대방을 믿어야 일을 맡기거나 재정을 맡기듯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면 할수록 나의 모든 영역이 전부 내려놓아지고 주님께 나의 삶의

주권을 이양해 드리기까지 하는 것이다.


"아, 이러다 하나님 꼭두각시로 살아가는 거 아냐?"


난, 정말 이런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면서

절대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나의 삶의 모든 영역을 다스려주시고, 책임져주시기를 원한다.


내가 원하는 것 말고, 주님께서 원하는 걸 하시기를 기도한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둘째, 헌신을 위한 순복.


'어떤 상황과 상관없이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가?'


정말, 그러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떤 상황이 올 줄 알고... 두려움이 앞선다.

헌신이라는 것은 주님께 받은 은혜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주님께서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날 사랑하셔서 영원한 생명이 거하는 나라, 천국의 시민권을 주셨다.

그 은혜가 너무 커서 헌신해야 한다.

헌신을 바라볼 때, 우리는 행위의 관점으로 바라보기 쉽다.

하지만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듯이 행위만으로 헌신했다 할 수 없다.

헌신의 시작은 바로 주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의 자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셋째, 죽음을 위한 순복.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이 말씀이 바로 죽음을 위한 순복이다.

나의 거짓 자아와 의와 죄에 대한 죽음은 곧 예수님의 사심을 의미한다.

그때, 우리와 하나님과 진정한 연합이 이루어진다.

특별히 기도하지 않아도 주님의 생각과 동일한 생각과 마음을 느끼고 또 그 마음에 따라

믿음의 행위에 이르는 것!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과의 사귐이요, 하나 됨이다.


나의 의지를 드려 하나님께 순복 한 적이 있는가?

구원과 헌신과 죽음이 있는 자리!

그 자리를 갈망하는가?

그 자리에 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며 연합하고 있는가?


질문을 던져보며 깊게 묵상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하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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