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전생의 원수였다?

동병상련 스토리#1. 우리들의 신혼 전쟁

by 글탐가

'와장창'


남편이 술상을 엎었다.

집들이 후, 일어난 일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술상을 엎을 수 있을까?'


술상을 엎는 남편에게 빡~ 돌아버린 내 눈에, 예쁘게 가지런히

놓여있는 오디오가 눈에 들어왔다.

화가 난 순간, 나에게는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다.


'번쩍'


오디오를 바닥위로 내팽개쳤다.

그 순간, 놀라서 두 눈이 휘둥그레진 남편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물론 다음 날, 아침 '내가 미친 또라이지!' 자책했지만

화가 나서 오디오를 집어 던진 그 순간만큼은 희열이 가득했다.

오디오는 아주 깔끔하게 박살이 났다.

방바닥에는 깨진 술병과 오디오 파편들이 뒤섞인 채 흐드러져 있었다.


그 후로 제정신이 아닌 모양새로 싸운 남편과 나!


남편과 나의 신혼전쟁의 시작이었다.

신기한 건, 28년이 지나서 돌이켜봐도 싸운 이유는 생각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다만 아주 피터지게, 가열차게 싸웠다는 기억만 새겨져 있을 뿐!


결혼한 지 28년, 참으로 지난한 나날들이었다.

물론 행복한 나날들도 많았지만

남편과 나는 정말 지겹도록 싸웠다.

그런데 정말 웃긴 건,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싸웠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나름 다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까지 생각했다는 것!

그것이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부부의 산 증인인

딸아이의 입술을 통해 믿기지 않는 말을 들었다.


"엄마, 아빠...진짜 지겹게 싸웠어. 나, 어렸을때부터 그게 트라우마였잖아."


오잉? 이건 또 무슨 헛소리?


처음엔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런데 구체적인 상황과 증거를 들이대며

아주 탁월한 기억력을 뽐내며 말하는 딸아이의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증인은 딸아이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함께 어울리며 놀았던

동네 아줌마들의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우리는 각기 다른 동네로 이사가고 흩어졌음에도 불구하고

1년에 두 세 번 정도 만남을 유지한 관계다.


그런데 그 모임이 있던 날,

자연스럽게 옛날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우리부부가 부부싸움으로 바람잘 날 없었다는 이야기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이쯤 되니, 우리 부부가 나름 싸우지 않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던지...


자, 일단 착각을 깨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과거 회상들.

과거를 돌이켜보니 참으로 지난한 날들이 많았다.

지난한 날들을 돌이켜보니

우리 부부가 아직도 건재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우리는 왜 싸웠을까?

술상을 엎고, 오디오가 부서지도록 싸웠는데

세월이 흐른 후에는 싸운 이유는 생각나지도 않고

그저 치열하게 싸웠던 기억만 남아 있으니

'정말 왜 싸운거지?' 궁금해졌다.


흔히들 결혼하자마자 신혼기간을

'누가 주도권을 쥘 것인가?'의 싸움기간이라고 한다.


솔직히 미친 생각이다.

서로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그 귀하디 귀한 시간을,

일생에 단 한번밖에 없는 그 단꿈에 젖어도 모자랄 그 시간을,

그깟 주도권을 갖겠다는 이유로 싸우고 또 싸움을 부추기다니!

(이것은 주로 주변 친구나 부모, 친지들이 부추기는 경우가 많다.)



28년전, 우리는 신혼의 단꿈 대신 치열한 주권전쟁터로 내몰렸다.

그 치열한 전쟁은 무려 28년이나 지속됐다.

28년을 살았으면 이해할만할 법도 한데

너무 놀랍게도 이해보다는 서로를 향한 오해의 폭을 늘리고 있었다.


나는 전생을 믿지는 않지만

전생에 원수였던 사람이 부부의 인연으로 만난다는 진짜 속 뜻은 이해가 된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뜻밖에도 정말 원수처럼 느껴질때가 더 많으니!

심지어 우스갯소리로 '남의 편'이어서 남편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조금 더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치열한 싸움은 당연한 거 같다.


서로 다른 부모와 배경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부부는 하나다'라는 말처럼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 쉽지 않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성격도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서로를 이해하는 폭도 다르고, 대화법도 다르고...

다른 것을 꼽자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결혼을 선택하는 것은

'사랑한다'라는 감정때문이다.

(물론 사랑하지 않아서 결혼하는 경우도 많지만 보편적인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감정의 극한에서 헤어지기 싫어,

옆에 없으면 미칠 것 같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소유욕도 생기고,

그렇게 시작되는 감정의 극한점에서 결혼을 선택한다.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혼을 사랑의 결실이며 완성이라는 착각속에서 출발한다.

그러한 출발은 현실과 부딪치면서 환상이 깨지게 되고

심지어 사랑까지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이라고 착각한 죄'


그것이 바로 결혼이다.


하지만 28년이란 세월동안 겨우겨우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그 원수를 진정으로 사랑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결혼인 거 같다.


결혼의 시작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그 시작에서 아름다운 열매로 맺어지게 할 지는

'결국 원수를 진정으로 사랑해야만 가능한 것'

이라는 것을 깨닫는 그 시기인 거 같다.


나는 비록 28년이란 세월이 걸렸고, 아직도 진행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지속하라고 하고 싶은 것은

둘이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서로 부딪치고 깍이며 모난 부분이 둥글어진다는 것이다.


나의 모난 부분이 둥글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인생 또한 둥글둥글 잘 굴러가게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니

이것이야말로 일거양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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