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울었고,
나는 남편이 애틋했다

동상이몽 스토리#9 딸의 결혼에 대한 동상이몽

by 글탐가

나에겐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던 딸아이~

그 아이가 결혼했다.

감사하게도 결혼의 모든 절차는 순조로웠고

코로나의 악상황에도 불구하고 결혼식까지 무사히 마쳤다.


딸아이의 결혼을 진행하면서 우연히 발견된 나의 결혼식 앨범.

정확하게 말하면 남편과 나, 우리의 결혼식 앨범이었다.


참으로 기분이 이상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지난 거 같은데 벌써 딸아이의 결혼식이라니~

내가 장모 소리를 듣다니~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다.


결혼이란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적인 존재로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란 성장한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되어가는 시간들을

함께 공유해 나가는 관계인 거 같다.


이번 딸아이의 결혼을 지켜보면서 내가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은

내게 마냥 어린아이 같았던 딸아이를 어른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주려는 노력이었다.

그래서 결혼식 전반의 모든 진행을 아이들이 책임지고 진행하도록 했다.


두 번 다시 할 일이 아니라며 결혼 진행의 힘듬을 고백했던

새내기 부부는 그 사이 더 많이 성장하고 서로 배려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


여러모로 참 감사하다.


그런데 딸아이의 결혼식을 앞두고 남편의 감정기복이 심해졌다.

어느때는 딸아이와 사윗감을 놓고 대견하고 기특하다며 뿌듯해하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이렇게 일찍 시집 갈줄 몰랐다며 서운한 마음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그런 남편에 비해 나는 조금은 담담하게 딸의 결혼식을 받아들였다.

오히려 기쁜 마음이 컸다.

딸이 일찍 결혼해서 멋진 가정을 꾸려

더 깊은 인생의 초대가운데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멋진 생각도 했다.


그 생각은 내가 일찍 결혼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나는 스물다섯에 결혼했다.


스물다섯에 결혼한 나,

스물 일곱에 결혼하는 딸!


심지어 내가 더 어린 나이에 결혼하지 않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심각한 성격차이와 갈등으로 이혼을 꿈꾸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결혼을 후회해본적은 없다.


일찍 결혼한 덕분에 두 딸 아이를 만났고,

또 일찍 결혼한 덕분에 젊은 나이(?)에 두 딸아이의 빠른 독립과

나의 제 2의 인생의 기쁨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그런 경험과 그런 생각이 있으니

딸아이의 결혼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찬성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남편은 딸아이가 너무 귀했다.

결혼식날에 울고 또 우는 남편을 보며

심지어 가족 친지들이 따라 울었다 한다.

또 사돈댁은 사위가 마음에 안드나 하는 생각까지 하셨단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남편은 사위를 너무 착하고 잘생기고 담배도 안피워서 좋다고 엄청나게 칭찬했다.

이건 사위가 마음에 들고 안들고의 문제가 아니라

딸아이를 시집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인 거 같다.


나는 엄마라 잘 이해가 안되는 ㅎㅎㅎㅎ


그날 남편을 따라 울었던 친지들의 대부분은

딸아이를 시집 보낸 지 얼마 안된 아버지들이 많았으니

그 복합적인 마음을 어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어찌됐든 28년을 살아온 우리 부부는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평화협정을 맺기 시작했다.

상의할 일도 많고, 또 무엇보다 딸을 시집 보내는 심정을 서로 공감하며 생긴 유대감이 더 강해졌다.

딸의 결혼에 대한 동상이몽으로 치열한 감정의 전투 끝에 찾아온 평화라 더 귀하다.



28년 결혼생활을 유지해 온 나는

의외로 부부에 대하여할 말이 적은 거 같다.


그저 서로 너무 다르다는 것!

그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데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것!

오랜 세월만큼 전우애로 끈끈하게 맺어진다는 것!


딸아이의 결혼식에서 펑펑 눈물을 흘리는 남편을 보며

나는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부부가 나이 들연서 서로를 더 애틋하게 볼 수 있다면

성공한 거 아닐까?


문득 빛바랜 나의 결혼사진이,

아니 우리의 결혼사진이 참으로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세월만큼 부부란 이름으로 엮여있는 정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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