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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 부부 이야기
우리, 함께 늙어간다는 것의 의미
동병상련 스토리#2 노인의 아름다움은 백발에 있다.
by
글탐가
Mar 23. 2020
검은 숲 속에서 흰색 풀잎이 한 두 가닥 고개를 내밀었다.
검은색과 흰색의 대비가 강렬해서 첫눈에 알아봤다.
처음에 난 흰머리였다.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약간 괘씸하기도 해서
핀셋으로 흰 잡초를 망설임 없이 뽑아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심각하단 생각은 안 들었다.
그리고... 6개월쯤 지났을까?
신경 쓸 일도 많고 정신없이 바쁜 세월을 지내다 보니
제대로 거울 볼 시간조차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검은 숲으로 울창했던 나의 머리 숲에
흰색 숲이 반쯤 덮여있었다.
그것은 마치 발견되면 자기를 뽑아낼 줄 알았다는 듯
깊은 속 머리에서부터 나기 시작했다.
검은 머리를 걷어올리고 보면 흰머리가 더 많이 보일 지경이다.
“네가 나의 눈을 숨기고 몰래 나온다고?”
이번에는 진심으로 괘씸해서 흰머리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첫날은 가열차게 뽑았다.
둘째 날은 조금 더디게 뽑았다.
뽑아도 뽑아도 계속 나오는 흰머리.
그러다 지쳤다.
팔이 아팠다.
그래... 내가 졌다.
숨기듯 검은 머리로 흰머리를 감췄다.
그렇게 나의 세월의 흔적을 감추려 했던 어느 날,
나를 사로잡는 성경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청년의 영광은 그 힘에 있고 노인의 아름다움은 백발에 있다.’
(잠 20:29/우리말 성경)
성경 속에 이렇게 멋진 말이 숨겨져 있다니.
화장실 거울 앞에 놓여있던 핀셋을 치워버렸다.
'그래~ 백발이 아름다운 노인이 되리라!'
그러다 문득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는 남편을 바라봤다.
나보다 나이가 3살씩이나 많은 남편의 머리숲은
더 흰숲으로 덮여 있었다.
거기다 부쩍 머리숱도 적어져 있었다.
바쁜 시간들속에 파묻혀 있다보니
내 머리숲과 남편의 머리숲이 희어져 있는 것을 발견치 못했구나!
무엇때문에 이렇게 바쁘게 살았을까?
평생 내 옆에서 동고동락 하며 살아온 남편에게 이렇게 무심하다니...
남편의 흰머리가 나를 돌이키게 했다.
"자기야~ 고마워!"
문득 던진 내 한마디에 남편이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뭐... 필요한 거 있어? 혹시 돈 필요해?"
이런~ 된장!
나의 감성을 단 한마디로 깨버리는 남편에게 곱게 눈을 흘겼지만
남편의 흰머리와 듬성듬성해진 머리카락을 보자 곧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냥, 우리 먹여 살리느라 고생했을 당신 생각하니... 눈물 나도록 고마워서!"
"야, 겁난다. 겁나. 그냥 하던대로 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느새 기분 좋아진 듯 얼굴에 미소를 띠는 남편이다.
우리, 함께 늙어간다는 것의 의미는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어가지만 '고마워'란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마워'라는 말이 기분좋게 느껴지는 것!
그런 거 같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자기야~ 근데...돈 필요하다면 줄거야?"
하하하~ 과연 남편은 돈을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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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의미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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