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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 부부 이야기
우리 정말 이혼할 수 있을까?
# 에필로그/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던 우리
by
글탐가
Mar 18. 2021
스물다섯 살에 결혼해서 28년을 남편과 함께 살아오면서
너무 놀랍게도 나는 나만 옳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이 답답했고
심지어 한심하기까지 했다.
또 나는 외로웠다.
그 외로움의 끝자락에서는 남편을 원망했다.
원망의 끝에 나오는 말이 바로
"우리 이혼하자!"였다.
28년을 함께 살면서 누군가는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았을 그 말을
나는 숱하게 입에 담고 살았다.
그렇지만 진심이 아니었다.
그건 그저 내 마음 좀 알아달라는 내 마음의 절규였다.
그렇게 절규하며 부르짖어도 남편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사랑이 내게서 떠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던 생각!
이혼을 입에 담았지만 단 한 번도 진심일 수 없었던 것은
바로 남편의 사랑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그 사랑이 떠났다고 생각했던 그 후로,
나는 비로소 이혼을 결심했다.
사랑이 없는 결혼은 도저히 지탱하기 어려웠다.
인터넷을 뒤져 이혼절차에 대해 알아봤다.
'그래! 재산은 아주 정확하게 반씩 나누자!'
'누구와 살지, 아이들에게 선택하게 하자!
아이들이 독립을 원한다면 그때는... 독립시키자!
이제 성인이 됐으니 괜찮을 거야.'
'시부모님께는 내가 상황을 잘 말씀드리고
가급적 상처 받지 않게 해 드리자!'
'우리 친정 쪽은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으니까 당분간 말하지 말고,
언니, 오빠한테는 나중에 말하자!'
'나는 집을 어디다 얻을까?
가급적이면 남편과 거리가 먼 곳으로 얻는 게 낫겠지?'
아주 구체적으로 이혼 후를 생각했고 계획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열과 복통으로 고통스러웠다.
자궁 폴립 수술 후의 후유증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심각하게 아팠다.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로 아팠지만 결과는 별 이상 없는 것으로 나왔다.
마치 꾀병을 부리는 사람처럼!
병원 진단은 수술 후유증으로 인한 가벼운 체기 정도로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는 것이었다.
훗날, 그 고통이 충수염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 난 6개월이 지난 후 충수염 수술을 했고,
수술한 의사의 입을 통해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충수염을 앓았는데
자체적으로 나은 흔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충수염인 줄 모른 채, 그 고통의 끝자락에서 나는 죽음과 대면했다.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진실들이 있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열심을 내며 살았을까?
내가 남편과 싸우면서까지 지켜내려 했던
나의 회사와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남편과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며 맛보는 지옥의 고통을
왜 나는 견뎌내고 있는 걸까?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게 느껴졌다.
나는 한없이 나약해졌고 우울해졌다.
그때 남편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사랑이 떠나 나를 증오하기까지 미워했던 남편.
그 남편이 나에게 다시 손을 내민 것이다.
약해질 때로 약해진 나는 힘없이 그 손을 잡았다.
나의 아픔으로 인해 우리 부부는 다시 극적으로 화해했다.
동상이몽으로 치열하게 싸우던 25년 차 부부가
이혼의 끝자락까지 간 지점에서 극적인 화해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28년 차 부부가 됐다.
28년 차, 극적인 화해를 맞이한 이후로 딸아이가 결혼을 했다.
딸아이의 결혼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들었던 생각,
우리 정말 이혼하지 않기를 잘했구나!
이제 우리 부부는 손을 잡고 산책도 하고 쇼핑도 함께 다닌다.
그렇다고 싸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치열한 지옥을 맛보며 싸우지는 않는다.
죽음의 끝자락에서 나에게 다시 손을 내밀어준 남편에 대한 감사가
아직도 내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다.
남편과 트러블이 있을 때마다
나는 그때, 나에게 내밀었던 남편의 손을 생각한다.
화해하고 난 지 얼마 안돼 남편의 신발을 사러 쇼핑몰에 갔을 때 일이었다.
"자기야~ 자기랑 이렇게 오랜만에 쇼핑 오니까 너무 좋다."
"그동안 당신이 바빠서 나랑 놀아줄 시간이 없었잖아.
당신 바빴을 때, 나 여기 혼자 많이 왔다.
혼자 와서 여름 바지 고르고, 신발 사고 그랬어.
그때 나 많이 외로웠어."
나만 외로운 줄 알았다.
나만 이해 못 받는 줄 알았다.
남편이 외로울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눈이 있어도 남편의 외로움을 보지 못했고
귀가 있어도 힘들다는 남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울컥 눈물이 났다.
나도 갱년기인가 보다!
애써 나의 눈물을 갱년기로 무마해보려 했지만
사실은 남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이 책의 첫 제목은 '25년을 살아도 동상이몽'이었다.
하지만 3년의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정말 이혼의 위기까지 갔다.
다행히 그 이혼의 끝자락에서 돌이킬 수 있었지만
어찌 됐든 참으로 지난한 삶이었던 28년이었다.
동상이몽 同牀異夢
같은 자리에 자면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면서도 속으로는 각각 딴생각을 하고 있음을 이르는 말.
동상이몽의 사전적 의미이다.
참으로 부부에게 합당한 말이다.
같은 침상에서 잠을 자는 부부!
둘이 하나가 돼야 행복할 수 있는 부부!
하지만 같은 침상에서 자지만 서로 다른 생각으로
지지고 볶고 싸우며 전쟁을 치르는 부부!
그렇게 28년을 살던 우리 부부가 이제 방향을 틀었다.
동병상련으로!
동병상련 同病相憐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김을 이르는 말.
동병상련의 사전적 의미이다.
남편과 나는 같은 병에 걸린 환자였다.
소리
는 들리지만 서로의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눈에 보이는 것들만 보고, 상대방의 아픈 상처를 보지 못했던 눈 뜬 장님!
28년, 치열하게 전쟁을 치러내며
이혼의 끝자락에서 선 우리 부부가
서로 부딪쳐가며 모난 부분들
이 깎고 깎이며
많이 부드러워지고 둥글둥글해졌다.
이제 동상이몽의 치열한 전투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함께 할 수 있는 동병상련의 마음 준비가 된 우리 부부!
검은 머리카락이 백발로 바뀌어 반백이 되고서야 겨우 평화협정을 맺는다.
28년의 결혼생활 동안 있었던 이혼의 위기들!
그 위기의 정점에서 매번 던졌던 질문!
'우리 정말 이혼할 수 있을까?'
그 질문 끝에 다시 한번 부부에 대해,
우리의 지난날들의 추억에 대해,
우리의 사랑에 대해,
또 자식과 부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렇게 수차례 이혼의 위기에서 돌이킬 수 있었고
지금은 행복하다 느낄 정도로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혼을 꿈꾸는 동상이몽 부부들에게
'우리 정말 이혼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져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 다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질문으로 나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죽도록 사랑하는 일' 뿐이길!
기대하고 또 기도한다.
또 나처럼 이혼위기에 있어서 현재의 삶이 지옥처럼 느껴지는 부부들에게
우리와 동일하게 '죽도록 사랑하는 일만 남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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