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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 증인 된 삶

# 살아내는 것.

by 글탐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마 28:18~20)
"그러므로 가서" "가라"는 말은 살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어떻게 가는지를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로 가라고 하지 않으시고 모든 곳에서 "내 증인이 돼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보내는 일을 친히 담당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요 15:7). 이는 우리의 인격적인 삶 속에서 지속되어야 할 모습입니다. 어느 곳에 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보내실 것인가를 친히 계획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 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벧 20:23~24) 이렇게 우리는 생명이 마치는 그날까지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요즘 저는 살아내는 것에 대해 진지합니다.

다만 생각이 아니라,

지식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 무엇인가?

그 질문 앞에 진지하게 서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호흡하는 것입니다.

호흡은 히브리어로 루아흐(ruach),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입니다.

호흡(숨) 그, 자체가 바로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 말씀이 이루어져야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는 것입니다.

살아있어야, 살아지는 것입니다.


조금, 말장난처럼 느껴지나요?


살아있어야 살아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말입니다.


생명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육신의 생명과 영혼의 생명.


그래서 이 땅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있으나 죽은 자.

산자.


살아있으나 죽은 자는 육신은 살아있지만 영혼은 죽어있는 자입니다.

육신은 살아있지만 영혼이 죽어 있다는 말은

호흡(루아흐), 하나님의 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모두 살아있으나 죽은 자로 태어납니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죄인이라 부르지요.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채 태어나는 것.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행위로 지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숙명인 원죄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나서

살아있으나 죽은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다시 태어나게(거듭남) 되는 것이지요.


거듭나야 비로소 산자가 되는 것입니다.

육신도 살아있고, 영혼도 살아있는 존재.

그렇게 육신의 기한이 다하고 나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 나라, 천국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 영원한 호흡입니다.


영혼은 영원히 살아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

그것을 바로 영생이라 부릅니다.


오늘 묵상글이 다소 어렵고 장황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생명에 대한 메시지는 정말 중요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의 기회는

육신의 생명이 살아 있는 동안만 주어집니다.

그래서 그 기회는 우리에게 선물인 것이지요.


살아있는 현재! present!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영원한 생명길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기에

현재는 선물입니다.


오늘,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그 호흡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증인이 되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호흡(성령) 없이는 우리가 증인으로

살아낼 길은 없습니다.


호흡이 있어야 생명의 열매가 있습니다.

오늘도 호흡 있는 삶이 되시길!

살아지는 삶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하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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