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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탐가 May 04. 2021

영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

나에겐 꿈이 있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 생긴 꿈이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작가로 부르셨다는 정체성이 생긴 이후,

나는 정말 좋은 작품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좋은 작품으로 상을 받고 싶었다.


그런 후, 시상식장에서


"모든 걸,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립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싶었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그 장면!


난, 그 꿈을 이루고 싶었다.

그래서 기도했다.


"하나님! 좋은 작가가 돼서, 좋은 작품을 쓰고, 또 상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릴 수 있게 해 주세요."


한참을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조용히 물으셨다.


"얘야~, 넌, 영광이 뭐라고 생각하니?"


그 질문이 내겐 너무 생소했다.

영광을 올려드리고 싶다는 기도는 열심을 내서 했지만

영광이 뭐냐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음... 감사요...?!"


더듬거리며 대답해 봤지만, 뭔가 명쾌한 대답은 아닌 듯했다.

감사는 그냥 감사합니다~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감사해서 영광을 올려드리겠다?

뭔가 안 맞는 대답이다.


한참 고민 끝에 나온 어리석은 대답,


"상 타는 거요."


하하하, 상 받는 떡밥에 관심이 많았던 내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답이었다.


쑥스러운 마음에, 좀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숨길 수 있겠는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영광을 올려드린다고는 했지만

영광이 뭐냐는 질문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그렇게 시작된 영광에 대한 묵상!


영광은 승리한 곳에만 존재한다.

그래서 온갖 형태의 전쟁터에서 승리한 자만이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1등만 기억하는 빌어먹을 세상!

그 이유는 승리자만이 갖고 있는 영광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을 영광의 왕이라 표현했을까?

하나님은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이다.

백전백승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전쟁이 하나님께 속해 있고, 그 전쟁의 군대 대장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세상 왕이 주관하는 전쟁터에서

우리는 승리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겐 영광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으로 싸울 때는 달라진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포하신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삼상 17:47)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심이 무슨 의미일까?


왜 전쟁을 말씀하시면서 구원을 말씀하실까?


구원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다.

구원은 단순히 예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느냐 못 얻느냐의 문제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걸려있으니 당연히 전쟁이다.

하지만 우리는 구원의 문제를 전쟁으로 보지 않는다.

구원의 문제를 사느냐 죽느냐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급하지 않고 여유롭다.


주님께 급하게 입을 맞춰야 하는 것도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생사의 갈림길을 우리 인간들이 어찌 예측이나 할 수 있겠는가?


사느냐, 죽느냐의 관점으로 구원의 문제를 바라볼 때

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을 수밖에 없다.

왜냐면 구원의 문제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서 생각하시는 전쟁과 우리가 생각하는 전쟁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거 같다.

하나님은 구원에서의 승리를 말씀하시는데

나는 나의 일에서의 승리를 생각한다.


하나님은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않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타나는 구원의 승리를 말씀하시는데

나는 나의 성공을 통한 승리의 영광을 말한다.


하나님과 나의 영광에 대한 관점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나는 지점이다.

하나님은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어떻게 구원하실까에 집중하시고

그것을 진정한 승리로 여기시며 천국잔치를 여시는데

나는 이 땅에서의 부귀와 명예와 성공을 통해 잔치를 열려고 한다.


나의 왕국이다.

나의 왕국에서 내가 왕 노릇하기 위함이다.

그러면서 뻔뻔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빌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려고 한다.

그리고 거짓 포장하며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걸, 꿈이라 여긴다.


참, 교묘한 포장술이요, 거짓된 자아에게 속아 살아 지내 온 나의 지난날들이다.


"넌, 영광이 무엇이라 생각하니?"


"십자가의 승리요."

십자가의 승리는 내가 이룰 수 없다.

그래서 오직 전쟁이 여호와께 속한 것이고

영광이 하나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광을 올려드릴 수 없다.

그저, 하나님께서 하시는 전쟁에 참여시켜주시는 영광에 참여하고

바라볼 수 있는 축복을 받은 자들이다.


십자가 영광, 그것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관통하는가?

정말 깊게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내가 생각하는 영광,

과연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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