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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Feb 23. 2021

자식 자랑이 싫다

자랑 말고 칭찬

얼마 전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아들이 16개월인데 말을 못 한다고. 언제부터 말을 잘하냐고. TV에 나온 16개월 남자아이는 낱말 카드를 보여주면 바로바로 답을 했단다. 영어로 동물 이름도 말한다고. 나도 봤다. 그 프로그램.


엄마가 낱말 카드만 계속 보여주면서 주입식으로 가르쳤네,라고만 생각했는데!


우리 아이는 28개월이 다 되어서야 조금씩 말이 늘었다. 16개월 때는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엄마 정도? 아빠라고 말한 게 두 돌이 넘어서였다. 그래도 걱정은 하지 않았다. 때가 되면 하겠지, 싶었는데 그 16개월 된 아이를 보면서 놀라긴 했다. 인터넷에서는 하나같이 엄마의 정성이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했다. 말이 느린 아이의 엄마는 정성껏 키우지 않아서, 가르치지 않아서, 책을 읽어주지 않아서, 말을 계속 해주지 않아서 그런 건가? 사실 느린 거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자신만의 속도가 있는 거니까.


시대가 바뀌었는지 몰라도 난 그저 예쁘게 말하는 윤후가, 잘 먹는 사랑이가 좋았다. 지금은 언어 천재, 수학 천재, 음악 천재... 천재들만 가득하다. 우리 아이가 늦은 건가? 내가 뭔가 해주지 않고 있나? 학습지를 해야 하나? 방문수업을 해야 하나? 비교하기 싫은데 자꾸 비교를 하게 만든다.


엄마들도 그렇다. 잘 웃고, 인사만 잘해도 예쁘다 할 나이인데 굳이 엄마가 나서서 아이에게 질문을 한다. 빨간색이 영어로 뭐야? 저게 영어로 뭐야? 우리 집은 몇 층이야? 아파트 이름이 뭐야? 무슨 동이야?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아이에게 하는 질문들은 목적이 뻔하다. 자랑하고 싶어서.




육아 예능의 폐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TV에 나오는 그 아이는 OO보다 어린데도 말을 그렇게 잘하더라, 기저귀도 뗐더라, 영어도 잘하더라, 또 TV에 나오는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짜장면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빵도 먹고 다 먹는데 얘는 왜 못 먹게 하냐, 그러니 애가 편식을 하는 거다 등등 쉼 없이 비교를 하고 또 한다.


와우. 어른들이 육아 예능을 그렇게 꼬박꼬박 잘 챙겨보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제의 OO보다 오늘의 OO이 나아진 점을 얘기하면 좋을 텐데. 항상 부족한 점만 콕 짚었다. 이제 기기 시작한 아이에게 걸음을 재촉하고, 이제 엄마를 말하는 아이에게 문장을 재촉하니 우리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언제나 칭찬을 받을까.


친정엄마는 또 달랐다. 아이만 보면 자꾸 뭘 그렇게 가르치려고 한다. 마냥 예뻐해주기만 하면 좋을 텐데. 언젠가는 친구 ㅁㅁ은 방문 수업도 몇 개나 하고 학습지도 하는데 넌 왜 동요하지 않냐고. ㅁㅁ엄마한테 물어보고 OO이도 좀 시키라고. 그럴 때 내가 보여주는 것이 있다.


 

 

어릴 적 엄마는 오빠가 다니는 학교만 가고 담임을 만나고 학부모 모임을 나갔다. 반에서 1등은 기본이었고, 전교에서도 늘 1, 2등이라 엄마는 누굴 만나도 고개가 뻣뻣했다. 선생님들도, 다른 엄마들도 심지어 학교에서도 대우가 달랐다. 그런 우쭐함이 좋아 내가 다니는 학교는 단 한 번도 오지를 않았다. 엄마는 끝까지 1등 엄마로만 남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도 내게 대놓고 얘기할 정도로.


그런 엄마가 내게 하는 부채질이 시원할 리 없었다.




남들 앞에서 내 아이를 자랑하며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고 싶지는 않다.

엄마가 자랑을 하면 아이도 자랑을 한다. 친구들 앞에서 영어를 말하고, 글자를 읽고, 자기 이름을 쓰면서 너희들은 이거 할 줄 알아? 뽐내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된다. 아이니까 괜찮은 건가? 그런 아이가 과연 바르게 자랄까.


집에서 엄마랑 아빠가 칭찬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거 같은데. (우리끼리만 알고 있는거다! 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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