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웠다 아쉬웠다
내 아이는 36개월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데리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애착 형성과 같은 이론보다는 막무가내 고집이었다. 말도 걸음도 어설프기만 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에만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쩔 수 없이 맞벌이를 해야하거나 몸(정신)이 좋지 않아 보육이 힘들다거나.
아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자랄 텐데, 언젠가는 내 손길이 필요 없어질 텐데, 그때의 난 뭘 할 수 있을까? 싶어 서둘러 독립을 시키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런 엄마는 아이의 '오늘'에 집착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OO을 했다는 것에, 함께하는 시간의 양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쿨한 육아란 이런 것?!
그냥 맞벌이는 싫다고, 살림과 육아에 전념하겠다고! 말해놓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내 기준에서는 용납이 안됐다. 더구나 아이를 맡기고 엄마들끼리 모여 동네 카페에 모여 수다를 떤다는 건 정말이지 이해 불가였다. 코로나가 기승인데도, 아이가 감기에 걸렸는데도 '아이가 심심해한다'는 핑계로 나 편하자고 꾸역꾸역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들여보내는 엄마들이었다. 이러니 아이들이 일 년 내내 감기를 달고 살지.
과연 나만 그런 생각을 할까. 어린이집 학대 뉴스에 달린 댓글들도 똑같았다. 대개는 그렇게 어린이집에 보내는 엄마들을 탓했다. 맞벌이가 아니면 어린이집에 보내지 마라, 녹음기를 품에 숨겨 보낼 정도면 보내지 마라, 마라~마라~ 뿐이었다. 여기가 마라탕 맛집! 작년 한 해 가정보육을 하며 들은 이야기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만나는 사람마다 아이의 사회성 운운하며, 집에서 끼고 있는 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며,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나를 유난스럽게들 바라보았다. 이 간극은 무엇?
돌 때부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엄마들은 어린이집 예찬론자들이 많다. 그들은 또한 둘째는 사랑이라고, 둘째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다둥이 예찬론자들이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보통 9시에 보내서 4시에 데려오면 밖에서 좀 놀리다가 집에 들어와 씻기고 밥 먹이고 재우면 끝이다. 세상에나! 육아가 이렇게 쉬워진다.
남들보다 1년 더 데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땐 몰랐는데 어린이집을 보내 놓고 보니 왜 그렇게들 못 보내서 안달인지, 이해는, 됐다. 청소를 하고 반찬을 하고도 시간이 남았다. 책을 읽을, 글을 쓸 시간도 생겼다. 그런데 마음이란 건 쉬이 편해지지 않았다. 선생님께 전해 듣는 아이의 오늘과 키즈노트에 올라오는 사진들이 마음에 닿지를 않았다. 아이 역시도 작년 한 해 함께 놀았던 사진들을 보면서는 조잘조잘 추억을 얘기하지만 키즈노트의 사진들을 보며 어린이집에서의 활동을 즐겁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물론 어린이집은 좋았다. 다른 사람들이 봐도 우와, 할 정도로 활동도 다양했고 아이도 가기 싫다고 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잘 다니고 있다. 단지! 작년 한 해가 더없이 좋았던 것이다.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든 게 아쉬운 것이다. 아이도, 엄마도.
어린이집은 건너뛰고 유치원으로 갈까, 내내 고민을 했다. 우리 땐 6, 7살에 유치원에 들어갔는데 뭘!
다들 보내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대세를 따라서 나쁠 건 없다고, 남들 다 할 때 안 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나 빼고 모두가 동의했다. 대체 나는 뭐가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 아이가 병원의 VIP가 되는 것? 그 이유도 없지는 않지만.
득 될 게 하나 없어 보였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반찬도 청소도 질이 달라져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아이에게 화도 못 낼 것 같았다. 살림에 대한 부담감과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동시에 짊어지느니, 해도 해도 티도 나지 않는 살림보다야 육아가 낫지! 싶었다. 어린이집도 좋지만 사진에서도 웃고 있지만, 엄마와 함께일 때 나오는 미소와 달랐다. 어디선가 봤다. 즐거운 거랑 행복한 건 다르다고. 그걸 봤다. 보고야 말았다. 나만의 착각일까.
난 여전히 어린이집이 싫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어린이집이 의무교육화 되어버린 현실이, 안 보낼 수없는 엄마의 입장이, 가정보육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이, 가정보육 시 체험(교육)의 한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이 싫다.
365일 24시간 붙어 지내던 작년 한 해를 평생 그리워할 것 같다.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든 지금을 평생 아쉬워할 것 같다.
육아가 쉬워진 것도 사실이지만 아쉬움이 더 큰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