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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May 21. 2021

표절이 싫다

도둑맞은 이야기

이 글은 제 순수 창작품입니다.


소설 창작 수업에서 처음 배운 건 플롯이 아니었다. 매주 단편소설을 한 편씩 제출했는데 제목 다음 줄에 써야 하는 양식과 같은 이 한 줄! 어떤 교수님은 이 세상에 순수 창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어디 있냐며 비웃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건 남의 글을 가져다 쓰지 않겠다는 일종의 서약이었다. 내게 남은 유일한 배움의 흔적이기도.


다른 사람의 브런치에서 내 글을 봤다. 소재도, 에피소드도 예문도 모두 같았다. 거칠고 투박한 내 글을 정교하게 다듬었을 뿐! 딸이 화장을 하고 새로 산 옷을 입었다고 못 알아볼 엄마는 없다. 브런치 홈이었는지, 인기글이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어쨌든 그 글은 주목도 받았다. 덕분에 찾았고 한편 씁쓸했다.




마음대로 가져다 쓰세요.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상 내 글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가. 누구나, 아무나 가져다가 입맛에 맞게 고쳐 쓰면 그 사람의 글이 되는 건가. 브런치가 뭐라고. 남의 글을 훔치면서까지 쓸 일인가.


글을 쓰는 족족 댓글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내 글에서 똥냄새 나? 똥냄새는 아니더라도, 글에서 풍기는 냄새는 있다. 인스타그램에서도 마찬가지다. 단 한 줄이라도 그 사람만의 표현이란 게 있는데 그걸 그대로 갖다 쓰는 사람이 있다. 대체 왜? 왜 그 한 줄을 못 써서 남의 글을 가져다 쓰는 건데? 문득 영화 <김씨 표류기>의 정려원이 떠올랐다. 저들도 남의 얼굴, 남의 쇼핑 목록, 남의 삶을 훔치는 히키코모리들인가? 못 쓰겠으면 안 쓰면 될 일을.




얼마 전, A가게의 케이크를 그대로 베낀 B가게가 이슈가 됐다. 결국 B가게가 문을 닫으며 사건이 종료되긴 했지만. 누군가의 제보가 아니었다면 B가게는 어땠을까. 베끼긴 했지만 자기가 A보다 잘 만들었으니까, 잘 되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로제 떡볶이도 그렇지만 미투 제품이 더 잘 나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보완을 했으니까. 


소비자가 있으면 그나마 낫다. 요즘에는 특히, 소비자들이 나서서 불매 운동을 해주니까.

만약 이름 없는 A 작곡가의 노래를 이름 없는 B 작곡가가 베끼면? 베낀 곡이 어쩌다 역주행이라도 해서 잘되면? A의 곡을 표절한 게 알려지면? 베끼긴 했어도 잘 다듬어서 뜬 것이 맞다면? 덕분에 A의 인지도가 올라갔다면? 그땐 어쩌지? 죄송하다고 말한 B의 말은 진심일까?


됐고! 베끼는 걸 막을 수 없다면 그 사람이 내 글을 더욱더 잘 다듬어주기를. 그래서 더 잘 되기를. 그렇게 정상에 올랐을 때! 누군가가 나 몰래 브런치에 제보해주기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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