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해 May 17. 2021

기대하기 싫다

글을 쓰는 이유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고, 아이와 놀고... 모든 시간들 속에 내가 있다. 내가 없다고, 사라졌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엄마, 아내, 딸, 며느리일 때도 항상 나는 '나'로 존재했다. 결혼 전, 출산 전 누릴 만큼 다 누렸다고 생각했기에 내 시간에 대한 아쉬움도 없었다. 그런데 이게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고 내 시간이란 게 다시 생기면서 1분 1초가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N 포털만 보던 나는, 맘카페만 보던 나는 브런치의 존재를 몰랐다. 순전히 엄마의 권유였다. 그런 게 있다더라, 심사도 있다더라는 말에 관심 없는 척! 하고 아무도 모르게 발을 내디뎠다. 합격 이메일을 받고서야 말을 꺼냈는데 그게 문제였다. 말하지 말걸.


그저 핸드폰만 들여다보느니, TV만 보느니, 잠만 자느니 끄적여보자, 는 생각이었다. 나를 몰랐다, 난 기왕이면 잘 쓰고 싶어 끄적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쓰는 것도 오래 걸렸지만 쓰고나서도 2, 3일은 수시로 수정을 했다.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도! 그러니 일주일에 두 편을 쓰면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왔다. 일주일에 한 편을 쓰든, 두 편을 쓰든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일단 글을 쓰는 행위 자체는 만족했다. 평생을 글만 쓰고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으니까. 평생의 소원을 이룬 셈이니까.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고 공감해주고 구독해주는 건 '덤'이었다. 덕분에 또 다른 기쁨을 맛보기는 했지만 집착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랬는데 엄마가 아니었다.


"왜 네가 쓴 글은 D 포털에 안 올라와?"


D 포털에 안 올라와도 되고 그것까지 바라지도 않고 거기 올라가려고 쓰는 것도 아닌데, 마치 내 글의 수준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여 올라가지 못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기대도 하지 말고 부담도 주지 마, 쪼옴! 터졌다, 결국, 또!




"공모전에도 내보고, 소설도 다시 써봐, 응?"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아니, 내 몸이 열 개인가요. 글이 뚝딱, 써지나요 어디!

핑계일지 모른다. 어떻게 해서든 쓸 사람은 쓰니까! 그렇다고 안 해 본 것도 아니다. 종착지가 브런치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공모전도 신춘문예도 제출이 끝이 아니다. 이게 되겠냐 싶지만 사람이란 게 어쨌든 기대를 하게 된다. 발표가 되고서야, 진짜 끝났구나! 하지, 그전까지는 하루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우습지만 그랬다. 그래서 싫다. 말도 안 되게 기대하는 내가 싫었다.


대체 난 왜 이럴까 싶지만 나도, 그 누군가도,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아야 쓸 마음이 생겼고 하나라도 더 쓸 수 있었다. 큰 맘 먹고 이제 막 책의 첫 장을 넘겼는데 책 읽어? 잘 생각했어, 기회가 되면 저 책도 한번 읽어봐! 이러면 너무 부담스럽지 않나? 기대와 관심, 독려는 정중히 거절합니다. 어머니, 어머니.


내게 주문을 건다. 부디 어떤 기대도 하지 않기를, 그래서 계속 글이 쓰고 싶기를! 아, 브런치 참 좋았는데!

   

매거진의 이전글 무슨 날이 싫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