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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May 11. 2021

무슨 날이 싫다

안부전화의 굴레

오늘 시댁에 전화드렸어요? 란 글이 맘카페에 올라오면 아차 싶어 서둘러 전화를 했다. 안부 전화를 기대하는 날엔 재빨리 하는 편이 나았다. 숙제를 하지 않은 찜찜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낼 순 없으니까. 뭐 이렇게 챙겨야 하는 날이 많아? 생각만 하다가 오늘 한번 쭉 적어봤다.


생신 > 설(신정, 구정) = 추석 > 어버이날 > 크리스마스 > 복날(초복, 중복, 말복) > 동지 > 한식 > ...


적으면 적고 따지면 많았다. 시부모님(조부모님) 생신만 챙겨도 세 번! 형제(자매, 남매)에 그 배우자 생일까지 챙기면 족히 다섯 번은 넘었다, 아차! 싶었던 것은 도리였다. 이걸 챙겨야 하나, 싶은 것까지 몽땅 챙겨야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도리만 겨우 하는 거였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어하는 일은 싫어하는 사람과 용건이 없는데도 통화를 하는 것이다."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가 tvN <어쩌다 어른>에 나와서 했던 말이다. 이 말에 진심을 다해 무릎을 탁! 쳤었다. 반대로 용건 없는 안부 전화는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해 준다는데, 정말 그럴까? 친구가 아닌 관계에서도?


별 일 없으시죠? 별 일 없지? 잘 지내세요, 잘 지내라! 안부 전화란 목적이 명확하면 대체로 이렇게 끝이 났다. 이 대화에서 친밀감을 느낄 수 있을까? 건강을 염려하고, 끼니를 걱정하는 말이 로봇 같았다. 영혼이라고는 1도 없는. 이런 식의 대화가 싫어 처음에는 간략하게나마 대화 내용을 적어두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는 5분이 채 넘지 않았지만 전화기를 들기까지는 50분이 필요했다. 없는 용건을 만들어서라도 전화하는 게 나았다. 그래서 내겐 무슨 날이 꼭 필요했다.    




넌 왜 용건이 있어야 전화를 하니?

꾸역꾸역 용건을 찾아내 전화를 건 며느리는 역적이  되었다. 전화 한번 하지 않는 아들도 있는데.


어른들은 용건 없는 안부 전화를 좋아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냐? 란 말속에는 염려와 소망이 모두 들어있었다. 부모님은 다 큰 자식들의 어린이날까지 챙겼다. 못다 한 사랑의 표현이란 걸 안다. 내가 이렇게 챙기는데 너희는? 이 논리가 아니란 것도 안다. 그럼에도 내게 쏟아지는 타박은 좀 억울했다.


OO날은 죄가 없다. 기대가 부담스러울 뿐!

물론 기대도 잘못된 건 아니다. 하지만 그 크기가 클수록 부담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전화도 만남도 선물(용돈)도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꼭 어떤 날이 아니어도 가능한데, 늘 무슨 날이라서 그래 왔던 것처럼 취급을 받았다.


코로나 19의 확산세가 가파를 때도, (예방) 접종 부작용 이슈가 터졌을 때도, 날씨가 좋지 않을 때도, 편찮으실 때도 수시로 연락을 했고 만났고 걱정을 했는데. 그런데 왜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지?


애정(관심)이란 게 그렇다.

365일 풍족하다고 생각하면 일 년에 딱 하루 있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생일에 연연하지 않을 텐데. 그런데 그게 누군가로부터 얻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수시로 확인시켜줘야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풍족하다 생각해야 채워지는 건데.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없다. 이미 난 역적이라서. 말한다고 달라질 것 같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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