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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Jun 08. 2021

넌씨눈이 싫다

가끔 부럽다

눈치가 없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다. 그런 사람들은 현실보다 인터넷 상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활동을 했다. 가령 남편이 주말이면 소파에서 꼼짝을 하지 않는다는 한탄에 자기 남편 자랑을 줄줄이 읊는가 하면 아이가 말이 늘지 않는다는 고민에 우리 아이는 15개월부터 문장으로 말했다며, 언어치료를 적극 권장했다. 대개 기승전, 자랑이었다.

우리 남편은, 우리 아이는, 우리 시댁은, 우리 친정은 그러지 않아요.

공감을 못하겠으면 스쳐 지나가면 된다. 그들 대부분은 분란을 만들고 조용히 사라졌다. 떼로 몰려들어 욕을 해도 묵묵부답. 돌아보지 않았다. 목적을 다했으니까.


난임 병원을 다닐 때였다. 단 하루도 눈물이 마르지 않는 곳이 있다면 바로 여기, 들어올 때 다르고 나갈 때 다른 곳도 바로 여기였다. 그곳에서는 누구나 시술에 성공하여 초음파 사진 한 장을 건네받는 순간을 기다린다. 원장실에서 나오는 누군가의 표정도 슬쩍 엿보게 된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곳에서, 대기실에 앉아 초음파 사진을 탁자 위에 떡 하니 펼쳐놓고 핸드폰을 붙잡고 여기저기 임신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첫째 아이의 재롱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조부모와 남편도 있었다. 눈이 퉁퉁 부은 옆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건지. 자신도 분명 그 옆 사람 중 한 명이었을 텐데. 그 심정을 모르지 않을 텐데. 초음파 사진을 받자마자 서둘러 가방에 넣고 재빨리 병원 문을 나서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기쁨은 집에서 만끽할 수도 있으련만.




눈이 내리는 걸 좋아한다. 밖에 나가서 눈을 맞으며 길을 걷고 싶고, 눈싸움도 눈사람도 만들며 눈 위에서 뒹굴고 싶다. 바라만 봐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눈이 내리는 현재! 에 충실하면 언제나 마음껏 기뻐할 수 있었다. 강아지처럼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는 나를 보며 그게 뭐가 좋냐고 구시렁대는 B가 있었다. B는 눈이 오면 길이 얼고, 차가 막히고, 일에 차질이 생긴다고 했다. 누가 그걸 모르냐고. 공감을 해주면 함께 눈싸움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았나? 찬물을 끼얹어도 하필 한겨울이라 한참을 오들오들 떨었다.


이게 사람을 아주 미치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넌 씨X 눈치도 없냐는 막말이 미안하지도 않았다. 깊이 파고들면 그들은 달랑 눈치 하나 없는 게 아니었다. 친구 여럿이서 한참 주식에 빠져있었다. 어떤 종목을 사면 좋을까 이야기하는데 내내 딴짓만 하던 친구 하나가 주식은 결국 다 잃는 게임이라고, 얼마 전 로또 4등에 당첨된 이야기를 했다. 이 친구는 자기가 듣고 싶은 부분만 골라서 듣다가, 아 이 얘기해야겠다! 생각하면 그다음부터는 자기가 해야 할 말을 기억하고 있는 데에만 온 힘을 쏟았다. 그래서 틈이 생기면 얼른 쏟아내는 거였다. 잊어버리기 전에. 흐름을 모르니 눈치도 없을 수밖에.  


유난히도 행간을 읽지 못했던 그가 장난처럼 했던 말이 있다.

"이 세상의 중심은 바로 나!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문해력도 공감 능력도 꽝이지만 정작 본인은 사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듣는 것도 능력이라고. 난 그냥 내 의견을 말했을 뿐이라고. 내가 중요해, 나는! 다른 누군가의 글을, 말을, 마음을 왜 굳이 내가 이해해야 하지? 그래. 네 말도 맞다.


잘 사는 친구,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 똑똑한 자녀를 둔 친구... 그 누구도 부러워한 적이 없는데! 누가 뭐라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 네가, 남의 눈치라고는 1도 보지 않는 네가 나는 가끔 부럽다. 믿기 힘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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