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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Sep 10. 2021

쫓기는 삶이 싫다

느긋하고 싶어서 바쁘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바쁘다. 아이가 도와주지 않아서? 아니다. 그냥 내가 바쁘다. 어린이집 등원 전까지 해야 할 일이 다. 우선 영양제를 챙겨 먹는다. 그리고 아이 우유를 주고 밥을 챙기고 양치를 시키고 옷을 입힌다. 틈틈이 설거지를 하고 나도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마지막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장난감들을 정리하면 끝. 따지면 별 거 없는데 등원 시간이 있으니 늘 쫓긴다. 그렇게 어린이집에 가면 우리 아이가 1등! 사실 그렇게 서두를 필요도 없었던 거다.


아이 등원 후에는 매일 한 시간씩 운동을 한다. 씻고 정리하면 10시가 조금 넘는데 그때부터 다시 바쁘다. 대개 월요일은 책을 읽고, 화요일은 반찬이랑 국을 만들고, 수요일은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쓴다. 목요일은 브런치의 글들을 읽고, 금요일은 대대적으로 청소를 하고 장을 보러 간다. 그런데 이 역시도 시간제한이 걸려있다. 하원 시간이 임박해지면 조마조마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지금 나가면 너무 빠른가? 지금 나가서 천천히 걸어가면 되지 않을까? 결국 문을 나서고야 만다. 하원 역시 1등! 아이는 어린이집 앞 놀이터  앉아 친구들이 나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한 시간 가량을.

아이와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면서도 수시로 시간을 확인한다. 아빠가 퇴근하기 전에 들어와 씻기고 저녁 준비를 해야 하니 6시 이전에는 집에 들어와야 한다. 저녁을 먹고 과일 챙겨주고 양치시키고 재우면 하루가 끝나는데 그때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깃든다. 글을 읽는데도 숨이 차는 건 무엇?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면 시간이 남아돌 줄 알았다. 느긋하게 낮잠도 자고, 브런치도 먹고, 보고 싶었던 영화도 보고! 마음껏 늘어져 보자, 쉬어보자 생각했다. 생각은 그러했는데 현실은..! 누가 운동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으라는 것도 글을 쓰라는 것도 아닌데 내가 나를 바쁘게 만들고 있었다. 다 내려놓고 집안일만 하면, 그땐 여유로워질 수 있을까? 아니다에 100만 표!!




오래전 회사를 다녔을 때그랬다. 출근길에는 오만가지 돌발 상황들이 일어날 수 있다. 9시에 딱 맞춰 오려면 지하철이 도착했다는 노래가 나오면 계단을 정신없이 뛰어내려 가야 하고, 신호등 초록불이 꺼질 것 같아도 일단 뛰고 봐야 하니... 그게 싫어서 일찍부터 나왔다. 이번 지하철 못 타면 다음 지하철 타지 뭐, 이번 신호등 못 건너면 다음에 건너지 뭐! 출근만이라도 느긋하게 하고 싶어서 집에서 빨리 나왔다. 그렇게 도착하면 8시. 역시 1등이었다. 친구들, 가족들과 만나도 약속 시간보다 한참 일찍 도착했다. 기다리게 하는 것보다 기다리는 게 마음이 편했다.


일이라고 다를까. 일정에 맞춰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일들이 연속해서 추가되면 과부하가 걸렸다. 일정이 빠듯한 것은 아니나, 쌓여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일단 마감 전에 다 해놓고 하루 이틀 느긋하게 검토나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쉼 없이 일을 했다. 일이 예상보다 빨리 끝나면 또 다른 일이 주어졌다. 느긋할 틈이 없었다. 회사란 곳은 그랬다. 예상보다 빨리했다고 상을 주지는 않았다. 일만 늘어날 뿐. 시간에 맞춰 주어진 일만 해내면 될 것을. 금방 넉다운되는 결정적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넘겨주는 게 나았다. 내 쪽에서 빨리 끝내주기를 바라는 다음 타자는 좋을 테고, 난 빨리 손을 털어서 좋고! 그래서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았다. 일이 그만큼 더 쌓일 테니까. 그럼 더 쫓길 테니까.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는, 딱 그 시간이 제일 좋다. 있는 힘껏 다리를 쭉 펴고 스트레칭하는 순간의 짜릿함이 좋다. 그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오늘 하루 바쁘게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6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는 날도 있다. 낮잠을 자는 날도, 브런치를 먹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은 잠들기 전, 이런 짜릿함이 전해오지 않았다. 이 정도면 중독인가 싶기도?  


365일 24시간 여유롭고 느긋하면 그 소중함을 모르겠지? 그것도 언젠가 무료해지겠지? 합리화를 살짝 해보지만, 실은 규칙적으로 책을 읽지 않으면, 운동을 하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으면 그 생활에 젖어들까 염려되었다. 그래도 괜찮잖아? 놔버릴까 두려웠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바쁘게 살아도 쫓기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할 일은 오늘 끝나게 되어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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