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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Sep 02. 2021

체벌은 싫다

훈육이란 이름


네 살 남자아이는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그의 아빠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똑같은 잘못을 해도 어느 날은 잘! 타일렀고 어느 날은 빵! 터졌다. 그날 밤 아이는 자꾸 뒤척였다. 비가 와서 체력을 다 빼지 못한 탓이리라. 거기다 핸드폰에서는 헬로카봇 주제곡만 스무 번째 나오고 있었다. 아빠의 한계가 임박해오고 있음이 숨소리로 느껴졌다. 이제 노래 끄고 자자! 아빠의 한 마디에 아이는 아빠의 얼굴을 정통으로 내리쳤고 아빠는 아이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렸다.

그만 때려! 엄마의 말에 아빠는 때리던 걸 멈추고 씩씩대며 말했다. 헬로카봇 황금특공대 사주기로 한 거 취소! 자든 말든 니 마음대로 해! 엄마는 아이를 다독여 재우고는 거실로 나왔다. 아빠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웃으며 TV를 보고 있었다. 절대 황금특공대 사주지 마! 다시 한번 못을 박고는 다시 TV를 보는 아빠였다.

다음 날 아이는 퇴근하고 들어오는 아빠에게 달려가 말했다. 아빠, 저 때리지 마세요! 말에 엄마는 속상했고 아빠는 다시 화가 났다. 자기가 때린 건 기억하지 못하고 맞은 것만 기억한다고. 아빠 때려서 죄송하다는 말이 먼저 나왔어야 하는데 덜 맞았다고. 깊이 각인될 수 있게 더 때렸어야 한다고. 정말 무섭고 아팠으면 저렇게 말하지도 못한다고.


아이가 아빠를 때린 게 벌써 두 번째다. 처음 아빠를 때렸을 때는 협박을 했다. 한 번만 더 때리면 너한테 아빠는 없어. 아이가 잘못했다고 빌고 또 빌어도 받아주지 않았다. 사과에 진심이 담겨있지 않다고. 네 살 아이가 보여줄 수 있는 진심이란 건 뭘까.




남편은 전문가들이 말하는 훈육 방식이 모두 옳은 건 아니라고 했다. 절대 안 되는 건,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고. 저대로 크면 애들 때리고 다니는 깡패가 될 거라고. 그땐 어떻게 감당할 거냐고. 아들은 모쪼록 강하게 훈육해야 한다고 했다. 딸이라면 자기도 안 때렸을 거라고. 자기도 아빠한테 맞았지만 아빠가 약을 발라주며 이러저러해서 그랬단다, 이야기하고 다독여주면 남자들만의 끈끈한 유대감이 생긴다나. 끽해봐야 때릴 만 했고, 맞을 만 했단 걸 텐데 유대감이 생기나?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그럼 나도 때려야겠네?라는 말에 남편은 질색하며 말했다.    

보통 엄마들은 조금씩 자주 때려 엄마의 힘을 수시로 업데이트시켜준다고 한다. 엄마가 때려도 아프지도 않고, 막을 수 있는 힘도 생겼다 생각이 드는 순간 엄마의 훈육은 끝이 난 거라고. 그에 반해 아빠들은 어릴 때 한 번 세게 때려 무섭다는 각인을 시켜준 다음부터는 업데이트를 절대 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아빠의 훈육은 오랫동안 먹힌다, 고 했다. 말인즉슨, 때려도 아빠가 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자들은 그렇다아? 학교 친구들과도 군대에서도 서로 치고받고 싸우고 나면 더 돈독해져. 그게 남자들 세계야. 그 논리라면 나는 여자라서 평생 알 수 없을 것 같다. 아빠한테 맞고도 다음 날 쪼르르 달려가는 아들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라면, 나였으면 적어도 일주일은 아빠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을 텐데. 한동안은 마주치기도 싫을 정도로 미워했을 텐데. 네 살이라 그런가, 아들이라 그런가...?

어쨌든 설전이 오간 후 남편은 다음부터 어떠한 협박도 체벌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짧고, 간결하게 때리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걸로 끝내겠다는데, 그 말 끝이 찝찝했다.




그럼 아이가 집 밖에서 울며불며 떼를 쓰는 상황에서 넌 어떻게 하느냐고. 먼저 갈 길 가는 건, 버리고 가겠다고 협박하는 거 아니냐고. 싸늘하게 변하는 내 표정이 아들에게는 더 큰 상처가 될 거라고, 이미지로 각인된 공포가 더 큰 법이라며 내 방식을 질책했다. 결국 우린 서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때리는 게 낫지는 않을 거 같은데. 남편은 그럼에도 그냥 니 방식대로 해주겠다는 거였다. 걷잡을 수 없을 땐 어쩌나 보자, 라는 심정 같은데?!


잠이 안 오는 날은 뒤척일 수 있지. 노래 하나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들을 수 있지. 꾸짖을 만한 걸로 꾸짖어야 혼내는 사람도 혼나는 사람도 납득이 가지. 그 대상이 네 살이라면 더더욱. 때리면 안 돼! 똑같이 백 번, 천 번을 이야기하면 언젠가는 그만하겠지. 불평불만을 말로 이야기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부모의 몫이지.


매일 생각은 하지만, 도를 닦는 심정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누가 옳고 그른지 알 수 없다. 그것도 아들은... ! 그런데 이건 아이가 성년이 되어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그저 때리지 않고 기른 게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거 보라고. 때리지 않고도 바르게 잘 자랄 수 있다고. 남편한테 보란 듯이 말해주고 싶은데. 그때 가서 말한들 무슨 소용있나 싶고... 우린 이미 늙고 병들었을 텐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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