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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Nov 24. 2021

병풍이 싫었다

인싸가 되고픈 아싸


완장을 차고 싶었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간 단 한 번도 임원이었던 적이 없다. 학기 초, 담임 선생님의 지목으로 임시 반장을 한 아이가 으레 선거에서도 당선이 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전에도 반장을 했고, 성적도 상위권이었다. 또한 친구들의 신임도 두터웠다. 그러니 웬만해서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없었다. 추천으로 후보에 오르는 건 더욱 경계해야 할 일이었다. 누군가의 장난이라는 걸 아니까. 0표의 수모는 내 몫이 될 테니까.  


심지어 과학 시간에도 실험 한 번을 직접 한 적이 없었다. 당시에는 세포 한번 현미경으로 보는 것도, 스포이트 한번 손에 쥐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였다. 대개 A은 항상 리더였고 B는 늘 서포터였다. C는 만날 결과를 정리해서 제출했고 D와 E는 노상 어슬렁거렸다. 남은 F는 언제나 관심이 없었다. 우린 수시로 역할을 바꿨지만 A와 B 둘만은 변함이 없었다. 보통의 우리는 지켜만 보았고, 그들의 경험을 듣는 게 전부였다. 괜히 나섰다가 망치면 우리 조는? 눈총은? 원망은? A가 계속 A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누구도 A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보란 듯이 해냈다.




아싸까지는 아니지만 인싸에게 물어보면 걔가 누군데? 할 것 같은, 나서지도 나설 수도 없지만 나서고 싶은 욕망만 있는 흔한 24번이 나였다.   

"오늘 24일? 24번 일어나 44페이지 읽어. 54번 나와서 문제 풀어."

선생님들의 이런 발표 방식이 좋았다. 공부를 엄청 잘하고, 발음이 아나운서 같은 친구도 자기가 손을 들어 발표를 하지 않는데, 내가 뭐라고? 정말 너무너무 하고 싶어도 손을 들 수 없었다.


초등 고학년 언젠가, 장기자랑에 나가기 위해 친구 몇 명이 교실 뒤에 모여 New Kids On The Block의 <Step By Step> 노래에 맞춰 안무를 맞추고 있었다. 두세 명의 아이가 심사를 했고 멤버가 되고 싶은 아이들은 남는 공간에서 열심히 안무를 배웠다. 결국은 몇 번 맞춰보는 것만으로 금방 익히는 친구들이 멤버가 되었다. 그때도 난 열망만 컸다. 확실히 인싸를 꿈꾸기는 했던 것 같다. 선택되지 않았을 뿐, 가끔은 욕심도 냈고 나서도 봤다?




네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도 리더가 있다. 힘의 논리도, 모두 나를 따르라! 하는 것도 아닌데 반 아이들 모두 그녀를 따른다. 모두 그 아이와 같이 놀고 싶어 한다. 다 같이 놀다가도 그 아이가 손을 털고 일어나면 모두가 따라 일어난다. 이런 것을 보면 리더십은 타고난 성향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리더 자리를 탐내지 않는다. 나도 OO 이처럼 친구들이 다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라는 부러움도 없다. 그냥 내가 OO이가 좋으면 그만이다.


과학 실험 한번, 임원 한번 해보지 못한 그때가 아쉬, 그들이 부러웠다. 오랫동안.

진정 리더십이 타고나는 거라면, 그런 유전자가 있는 거라면 내 자리에 만족하고 살걸. 애초부터 내게는 없는 유전자라고 생각하고 살았으면 덜 피곤했을텐데.  


진작에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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