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 히어로와 아이의 마음
작년부터 깊게 빠져든 콘텐츠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이언맨 시리즈와 토르 두 편을 본 정도가 전부였는데, 어느 날 어벤저스 3편을 보게 된 후로 두어 달 안에 나머지 작품들을 다 봐버렸다. 인크레디블 헐크만 빼고. 마지막 어벤저스 영화는 영화관에서 네 번이나 봐버렸고, 이런저런 굿즈도 사기 시작했다. 나이 30 먹은 회의주의자이자 극단적인 무신론자인 아자씨가 무슨 수퍼 히어로냐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마블은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한다. 나는 성격적 결함을 극복하고 좋은 사람이 된 토니가 되고 싶고, 보통 인간이라는 명백한 한계에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클린트, 나타샤가 되고 싶다. 스티브처럼 흔들리지 않는 정의로운 마음을 갖고 싶다. 왜 이런 수퍼 히어로물이 내 마음을 움직일까 생각해 봤지만 이렇다 할 답은 내리지 못했다.
요즈음 마음이 외롭고 서러울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듣는 노래가 있다. “끝없는 어둠에서 뛰쳐나가자, 내 손을 잡아” 로 요약할 수 있는 드래곤볼 GT 오프닝인 Dan Dan 이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멜로디가 마치 따뜻한 포옹같이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아주 어린 시절, 나는 지금 마블에 빠져든 것만큼 드래곤볼에 빠져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드래곤볼도 일종의 수퍼 히어로물이다. 아주 많은 요소가 다르지만, 결국 주인공은 단지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선한 의도 하나만으로 장애물을 이겨내고 지구를 구한다. 조금 더 줄이면 이건 대부분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영웅” 내러티브다.
어린이들에게는 참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먹고 싶은 과자를 마음대로 살 수도 없고, 나를 괴롭히는 같은 반 친구와의 관계를 내 힘으로 끊어낼 수도 없다.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 차마 용기가 안 나서 인정하고 사과를 못할 수도 있다. 어린이들에게 부모나 선생님은 수퍼 히어로나 마찬가지인 존재다. 단지 나를 위해서, (어린이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거대한 장애물을 치워주기도 하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게 하니까.
지금이야 부모님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 남동생과 나는 집에 홀로 있을 때가 많았던 것 같다. 부모라는 수퍼 히어로가 없었던 우리가 드래곤볼에 그렇게도 빠져들었던 것은 그런 이유였을까. 특히나 나는 두 살 형으로서 오공은 못되더라도 천진반은 되었어야만 했다. 또 우리는 부모님 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꽤나 빠르게, 뼈저리게 느꼈었다. 이를테면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라든지. 어쩌면 오공과 그의 친구들은 그런 수퍼 히어로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른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자유롭게 먹고 마시고 꼴 보기 싫은 사람은 잘라내고 하지만, 취업 같은 일은 정말 쉽지 않고, 여전히 사람에게 데인다. 혹시 나는 같은 이유로 마블에 빠져든 게 아닐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더 이상 나약해 울지도 못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수퍼-하지는 않더라도 히어로가 될 때다. 온 지구를 구해내지는 못해도, 힘에 부쳐 주저앉은 사람이 있다면 일으켜 세워주고 싶다. 토니는 커녕 클린트도 될 수는 없지만 그렇다면 콜슨 요원이라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