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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호 Apr 10. 2022

최선을 다하면 안 된다

#일 #회사 #과로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회사에서는 물론이고 퇴근하고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보고서 잘 쓰는 법 따위의 자기계발서나 영어 원서를 읽는 식이다. 딱히 목적이 수반된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누워서 역사 유튜브라도 본다. 시간이 흘러가는 걸 보면 엎지러진 물을 보는 것 마냥 속이 쓰려서다.


지난 주말부터 몸살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사무실에서 감기 기운이 있는지 으슬으슬 춥고 목이 간질거린다고 말했다. 얼마 전 가족이 코로나19에 확진됐던 동료 직원이 말했다. "우리 남편 증상이랑 똑같네." "설마요." 내가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그분 말이 가시처럼 목에 걸렸다. 나는 5시쯤 퇴근한 후 회사 근처의 소아과 의원에 들렀다. 신속항원검사를 해 주는 곳이다.


의원에는 환자들이 적지 않았다.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도 있었는데, 엄마 품에 안겨 울고 있었다. 혹시라도 코로나19라면 아이한테 옮길까 봐 복도에서 기다렸다. 내 차례가 되었다. 주사실 팻말의 방 손잡이를 돌렸다. 임시로 주사실을 검사실로 쓰는 모양이었다. 손잡이가 빠깍하며 열렸다. 가슴이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이 방역복으로 갈아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행사 개막 전 오색 테이프 앞에 선 귀빈 같았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모습이었다. 선생님 손에는 가위 대신 면봉이 들려 있다는 게 달랐을 뿐. 사회자가 신호를 주면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태세였다. 선생님은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곤 그걸 신호로 해서 긴 면봉을 내 콧구멍으로 깊숙이 넣었다. 쑥, 쑥, 쑥. 이제 엉덩이를 떼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한 손으로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쑥쑥쑥, 쑤욱, 쑤욱. 닭똥 같은 눈물이 흘렀다. 사명감을 가지고 검사에 임하는 게 작디작은 면봉 끝에서도 느껴졌다. 방역복을 입으면 슈퍼 히어로의 슈트처럼 없던 힘이라도 솟아나는 걸까.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양성입니다." "네?" 일본인 특유의 다소 과한 반응이 절로 나왔다. 며칠 전 올들어 처음 한 외식이 주마등처럼 머리속을 스쳐 갔다. 단 한 번으로 감염된다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하느님께 속으로 원망했다. "아, 아니네요. 음성이에요." 의사 선생님이 손을 가로저으며 미안하다고 했다. '하느님, 방금 한 말은 취소하겠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체온을 쟀다. 37.3도였다. 의사 선생님은 미열이 있고, 기침을 하니까 감기약을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3일 동안 먹고 낫지 않으면 재검사를 받으러 오라고 덧붙이면서. 재검사라는 말에 적잖이 놀랐지만, 애써 태연한 척, 놀란 표정은 마스크에 숨긴 채 진료실을 서둘러 나왔다.


지난 주말부터 몸살 기운이 있었다. 집과 회사만 다녔던 터라 코로나19를 떠올리진 못했다. 단순히 컨디션이 떨어진 탓이라고 여겼다. 증상이 심해지진 않았다. 그렇다고 나아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월요일부터 또다시 의욕을 냈다. 출근 전에는 카페에서 영어 원서를 읽고, 퇴근하고도 쉬지 않고 영화를 보면서 영어를 따라했다. 수요일에는 야근을 했다. 그러다가 탈이 난 모양이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가볍게 여기지 말았어야 했다.


결국 금요일에 휴가를 냈다. 테마는 멍 때리기였다.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늦은 오후의 볕은 따갑지 않고 보드라웠다. 하지만 오랜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수필집 한 권을 챙겨갔다. 김형석 교수가 쓴 ⟪백년을 살아보니⟫였다. 백세 철학자의 책에서 인생의 지혜를 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리 건강하지 못해서 조심조심 살아왔다고 한다. 그게 습관이 되어 지금도 무리는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 일의 90%까지만 하고, 10% 정도는 항상 여유를 남겨둔다고 한다. 그래야 언제든지 하고 싶을 때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문득 최선을 다하면 안 된다는 김영하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 말인데, 당시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세상에는 겪어 봐야 비로소 아는 게 있다. 이번이 그랬다. 그제서야 진의를 알 것 같았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의 100%를 사용해선 안 돼요. 능력의 60~70%만 써야 해요. 인생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능력이나 체력을 남겨둬야 하는 거죠.”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고 마라톤인데 한꺼번에 에너지를 쓰면, 정작 중요할 땐 힘을 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두 분은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전문가다. 전문가는 달리 말하면 오래 버틴 사람들이다. 지구력 끝판왕들이 한목소리로 완급 조절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삶은 한 번에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알 듯 말 듯 알쏭달쏭하다. 어떤 때에는 최선을 다해야 하고, 어떤 때에는 최선을 다하면 안 된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 그 어름에 답이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아직 세상을 알기에 나는 여전히 어리다.


Photo by Martin Sanch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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