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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호 Apr 21. 2022

우리 집 셋째 아들

#팬 #위로 #엄마 #가족

"컴퓨터 켜야지."

엄마가 노래를 흥얼거리다 말했다. 나는 리클라이너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다가 고개만 까딱 든 채 불량하게 답했다.

"아직 1시간이나 남았구먼."

그러자 엄마는 나를 쏘아보며 덧붙였다.

"그거 성공하려면 컴퓨터 앞에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더라."


오늘은 트로트 가수 이찬원 콘서트 티켓 예매일이다. 며칠 전부터 엄마가 카톡으로 알려주고 달력에 표시해둔 데다, 티켓팅 1시간 전부터 손수 알람까지 울려주신 터라 꿈에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컴퓨터 전원을 켜고, 오랜만에 경기에 나서는 프로 게이머처럼 손을 풀었다. 엄마는 내 어깨까지 주물러 주며 한마디 보탰다. "이번엔 성공해야 돼. 아들 파이팅!" 대학교 입학 시험 보러 갈 때도 이러지 않으셨던 것 같지만.


"아들, 어떻게 됐어?"

두 손을 모으고 타조처럼 목을 길게 뺀 엄마의 눈빛에는 간절함마저 느껴졌다.

"VIP석으로 예매했어."

"정말?"
엄마는 아이처럼 환호작약했다. 그러더니 발을 동동 구르며 거실로 뛰어나갔다. 이모한테 자랑해야겠다는 말을 남긴 채. 누가 보면 로또라도 당첨된 줄 알았을 것이다.


엄마는 이찬원의 팬이다. 연예인 팬이 된 건 평생에 처음이다. 오래전 비의 찐팬이었던 친구분을 따라 콘서트에 가신 적이 있지만, 그때도 난 가수덜 왜 좋아하는 줄 모르겠다고 하시던 분이다. 그랬던 엄마가 180도 달라진 건 순전히 나 때문이다.


나는 근래 아토피를 앓았다. 철없던 둘째 아들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고, 엄마와 아빠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한동안 집안 분위기가 무거웠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빨래를 온 집안에 걸어 놓은 것처럼.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왔더니 엄마가 소녀처럼 웃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엄마 얼굴에 웃음을 되찾아준 건 TV조선의 <사랑의 콜센타>였다. 트로트 경연대회에서 입상한 일곱 명의 가수가 시청자들의 신청곡을 불러 주는 프로그램이다. 엄마는 이찬원이 트로트를 가장 구성지게 부르고, 대구에서 상경해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원픽으로 꼽았다.


그 후로 엄마는 이찬원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샅샅이 찾아봤다. <내일은 미스터 트롯>과 <사랑의 콜센타> 재방송은 거실의 가족사진처럼 늘 켜져 있었고, <라켓 보이즈>, <엄마는 아이돌>, <불후의 명곡>, <톡파원25시>, <신상출시 편스토랑> 등을 섭렵했다. 게다가 엄마는 생전 가까이 하지 않던 편의점 단골이 됐다. <신상출시 편스토랑>에서 나온 이찬원 우승 메뉴를 사 먹기 위해서다. 그 덕에 우리 집 식탁에는 삼각김밥과 된장술밥이 등장했다. 요새는 이찬원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는 와중에 스마트폰으로 이찬원 노래를 틀어 놓으신다. 내가 하나만 보시라고 잔소리를 했더니, 돌아온 답이 스밍해야 하신단다.

"그런데 스밍이 뭐야?"

"넌 젊은 애가 그런 것도 모르냐?"

내가 한방 먹었다. 결국에 궁금한 나머지 구글에 검색해봤다. 스밍은 스트리밍의 준말로 팬들이 음악방송 순위 채점에 반영되는 음원 재생 횟수를 높이기 위해 가수의 음악을 반복 재생하는 거라고 쓰여 있었다. 엄마는 형과 내게 그러했듯이 가수를 위해서도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히 하고 있었다.


내가 아토피와 싸우는 동안 엄마는 아들 병간호를 하면서 이찬원 노래로 우울한 마음을 달랬고, 힘든 시기를 버티셨다. 이찬원이 엄마의 안식처이자 돌파구였던 셈이다. 그래서 이찬원은 우리 집 셋째 아들이다. 정작 본인은 모르겠지만. 이찬원 가수가 오래오래 활동하길 바란다. 앨범도 많이 내고 콘서트도 자주 열어줬으면 좋겠다. 굿즈도 다양하게 만들어주면 금상첨화겠다. 엄마가 아주 오랫동안 즐거우실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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