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호 May 11. 2022

내 이름은 광대

#처음 #면접 #취업 #회사

아주 오래전이지만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하는 날이 있다. 그날은 내 생애 가장 우스꽝스러운 날이었다. 아마 웬만한 시트콤도 그날 에피소드에는 비하지 못할 것이다. 언론고시생 때의 일이다. 그날은 그해 두 번째 면접날이었다. 첫 면접을 4월에 보고 11월이 되어서야 겨우 두 번째 기회를 잡았으니 오죽 간절했을까. 그 자리에서 내 모든 걸 남김없이 쏟아내야 한다는 결의가 솟구쳤다.


나의 간절한 소망은 경쟁자의 면면이 드러나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맨 오른쪽 남자는 기자를 너무 하고 싶은 나머지 안정적인 대기업을 박차고 나왔다고 했다. 그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대기업에 사표를 던진 결단력의 소유자였다. 내 왼쪽은 또래 여자였는데, 외국어고 출신으로 영어는 물론이고 제2외국어까지 능숙하게 구사하는 재원이었다. 한 면접관은 그녀를 일찌감치 후배로 점찍은 눈치였다.


당시 나는 가진 것보다 없는  많았다. 직장 경력이 없고 해외 경험이 없고 토익 고득점이 없었다. 2외국어는 둘째치고 토익 점수도 겨우 800점대였다. 취업시장에서 체면만 구기지 않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시험용이었다. 구태여 면접관이 영어로 자기소개라도 시키면, 헬로   인트로듀스 마이셀프만 시전하고  먹은 벙어리가   틀림없었다. 당장 바닥을 파고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대로 면접이 끝나길 바랐다. 그때 한 면접관이 물었다. 희망 연봉 3,200만 원이라고 적은 이유를 설명해주세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유독 그 신문사 지원서에만 희망 연봉란이 있었다. 모범 답안을 몰랐던 나는 희망 연봉을 산출하느라 애를 먹었다. 한편으로 질문이 나오면 고민한 시간만큼 상세히 답할 자신이 있었다. 


내 답은 이랬다. 지방에서 상경해 사는 형편이라 월세를 내야 하고, 식비와 교통비, 문화비 따위로 얼마를 쓰고, 저축과 비상금, 부모님 용돈으로 얼마가 필요하다고. 뜻밖의 답을 들은 면접관들은 코웃음을 쳤다. 아뿔싸, 나를 제외하고 희망연봉을 적은 지원자는 적어도 그 방에는 없었다. 게다가 그 신문사는 경제지였다. 그들이 궁금한 건 내 시시콜콜한 가계부가 아니었다.


여전히 희망연봉의 답이 '회사 내규에 따름'이란 걸 모르는 나는, 면접관 너머 창밖만 바라봤다. 수업 종료 종이 울리길 기다리는 학생처럼.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한 면접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얼굴에 화장한 거예요? 나는 나도 모르게 한 손으로 얼굴을 매만지면서 답했다. 비비크림 발랐는데요. 순간 일동 뭇웃음이 터졌다. 전날 고시반 여후배가 비비크림 샘플을 챙겨줬는데, 화장품이라곤 로션밖에 모르던 내가 그걸 다 바른 게 화근이었다. 


이 한 몸 희생해 경쟁자들의 긴장이라도 풀어줬으니 이걸로 족하자. 나는 해탈한 듯이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다음엔 무슨 말이 오갔고 어떻게 면접이 끝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비비크림 폭탄이 면접장에 떨어졌고 그 바람에 모든 게 사라졌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이.


겨우 생애 두 번째 입사 면접에 임했던 나는 의욕만 앞섰을 뿐 실력을 보여주기엔 어설픈 애송이에 불과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썼다. 반복적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우리를 결정한다고. 그렇다면 탁월함은 행위가 아닌 습관이라고. 무던한 연습과 실전이 거듭될 무렵 나는 운이 좋게도 기자 시험에 합격했다.

출처: KIM(@rebis715), 강릉 정동진 썬크루즈 조각공원, instagram.com/rebis715


매거진의 이전글 작가 좀 되어 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