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호 May 13. 2022

작가 좀 되어 볼까

#글쓰기 #작가 #문우 #꿈

전 직장 동료 A가 톡을 보냈다.


- 나도 글 좀 써볼까.


A도 내가 쓴 수필을 읽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벌써 친구 서너 명이 내 글을 보고 글을 쓰고 싶다고 했던 터. 내 글의 어떤 면이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키는지 알 수 없지만, (저 정도면 나도 쓸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단 걸 모르지 않지만) 긍정적인 신호임에 틀림없었다. 긴 여정을 함께 걸을 동반자가 한 명 더 느는 것이니까.


내 글을 읽고 글을 쓰고 싶어 졌냐고 타이핑을 치는데, 포스터 이미지가 눈에 들어왔다. 사내 신춘문예 포스터였다. 그제야 전후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A는 신춘문예 포스터를 먼저 보내고 나도 글 좀 써볼까,라고 운을 띄웠는데 내가 카카오톡 알림창에 뜬 마지막 메시지만 보고 착각한 것이다.


나는 도전해보라는 응원 메시지를 보내면서, 요새 글을 쓰고 있는데 내 글을 보고 하는 말인 줄 혼동했노라고 부연했다. 그러자 A는 대뜸 글을 보여달라고 했다. 내 글이 A에게도 자신감을 심어줄 게 틀림없으므로 부끄러움은 잠시 서랍에 넣어두기로 했다. 더 큰 부끄러움은 A에게 브런치 프로필을 공유한 후 벌어졌다. 이전에 프로필을 공유한 적이 없어서 카톡창에 어떻게 보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 과장해 브런치 프로필 사진이 86인치 4K 와이드 TV만 하게 보였다. 카톡창을 그득 채운 사진을 상상해보시라. 민망함이 86인치만큼 확대될 것이다. 무엇보다 사실 이게 가장 낯간지러웠는데 김민호 작가라고 쓰여 있었다. 작가라니, 작가라니······. 황망한 나머지 나는 재빠르게 엄지를 움직였다. 이렇게 보일 줄 미처 몰랐다고. 창피하다고.


하지만 A는 백의의 천사였다. 문자 그대로 그녀는 간호사인데, 병원 환자뿐 아니라 작가 지망생의 깨지기 쉬운 마음까지 세심하게 어루만져줬다. 글이 술술 읽힌다, 이렇게 잘 쓰는 줄 몰랐다면서 브런치까지 가입해 구독했다고 답했다. 내심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나는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연신 허리를 숙였다. A는 볼 수 없었겠지만.


문득 나는 이런 상상을 했다. 이렇게 된 김에 진짜 작가가 되면 어떨까.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책도 내고 광화문 대형서점에서 사인회를 여는 상상. 당장 손에 잡히는 게 하나도 없고 감히 내게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되지 않는 일이지만 왠지 기분이 좋았다. 매체와 인터뷰하는 단꿈마저 꾸다간 침을 흘릴 것 같아 한 손으로 뺨을 찰싹 때렸다.


한편으로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지 않느냐는 맹랑한 생각을 했다. 자꾸 작가라 호명되고 그 말을 실현하기 위해 계속 쓴다면 말이다. 기대도 없이 절망도 없이. 우리 속담에도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미국에서는 어떤 학생에게 앞으로 성적이 오를 것이라고 기대했더니 실제로 성적이 향상됐다는 실험도 있다. 사회학자 머튼은 이를 가리켜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고 이름 붙였다. 우연한 예언이 예언의 실현을 위한 원동력이 되고, 결국엔 그 예언이 현실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유행가 가사처럼 말하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된다는 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말.


나는 가끔, 아주 가끔 일을 크게 벌인다. MBTI를 고백하면 INFJ로 무대 위보다는 카메라 앞보다는 뒤편이 편하지만 이번만큼은 용기를 내 A에게 톡을 보내야겠다. 나도 작가 좀 되어 볼까.

매거진의 이전글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 글 짓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