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부산 #실수 #가족
여행 일정은 완벽했다. 마치 한 치의 오차 없이 작동하는 트루먼 쇼 세상처럼. 우연이나 실패는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어 보였다. 여행을 다녀와서 마땅히 건질 만한 에피소드가 없을 게 걱정이라면 걱정이었다. 대개 여행기는 예기치 못한 경험이나 실패담이니까. 하지만 괜한 기우였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광안대교가 이야기보따리 그 자체일지.
가족 여행을 가자고 먼저 말을 꺼낸 건 엄마였다. 엄마는 형네 식구와 다 같이라면 어디든지 좋다고 했다. 하긴 마지막 가족 여행이 까마득했다. 우리 집 일곱 식구가 괌에 갔다 온 게 코로나 유행 전이었으니까. 그리고 엄마는 전권을 내게 위임했다. 형은 회사일로, 형수는 조카 둘을 돌보느라 바빴다. 나에게도 회사일이 있었지만 딸린 자식도 처도 없었다. 군말 없이 따랐다.
바다는 역시 동해지. 나는 강릉과 속초를 저울질을 했는데, 막판에 부산으로 급선회했다. 강원도는 숙소 예약부터 난관이었다. 부산으로 여행지를 정한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장소와 시간을 촘촘히 교직하여 2박 3일 일정을 짰다. 여행 일정을 처음 본 형의 반응은 이랬다. 여행사 차려도 되겠어. 어딘가 비꼬는 듯했지만 문자에는 목소리의 고저와 톤이 없었다. 예상대로 형은 첫째 날부터 패키지 관광도 이보다 빡빡하지 않을 거라고 투덜거렸다.
부산에서 마지막 밤이었다. 예정대로라면 황령산 전망대에 올라 야경을 즐길 차례였다. 일정에 제동을 가한 건 형이었다. 송정의 호텔에서 황령산까지 차로 30분이나 걸린다는 게 이유였다. 반나절 동안 롯데월드 일정을 소화하느라 모두 녹초가 됐던 터라 형의 제안을 따르기로 했다. 우리는 차 두 대에 나눠 타고 해운대 더베이 101로 향했다. 아무 문제가 없으면 15분 뒤 빛의 향연에 흠뻑 취할 게 틀림없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형이었다. ”어디야?” 이미 해운대 더베이 101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나는 날 벼린 중식도로 도마를 내리찍듯이 날카롭게 답했다. “광안대교.” 해운대를 지나쳐 광안대교 위를 달리고 있던 것이다. 엄마는 나를 달랬다. 연신 핸드폰 카메라 셔터를 누르시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야경이나 실컷 보자.”
구태여 핑계를 대자면 이렇다. 초행길이라 내비게이션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사위가 금세 어두워진 탓에 표지판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국에서 최강 난도를 자랑하는 부산 도로를 만만하게 본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광안대교 왕복 통행료를 지불하고 나서야 해운대 더베이 101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해운대 야경은 광안대교로 뿔난 마음을 녹일 만큼 화려했다. 초고층 빌딩이 해안선을 따라 근위병처럼 도열했고, 인공 빛은 남실거리는 물결을 따라 춤췄다. 우리 가족은 야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는 쏙 내키지 않았지만 카메라 앞에 섰다. 짜증 섞인 표정은 잠시 서랍에 넣어둔 채.
해운대에 올 때처럼 두 대의 차로 나눠 타고 호텔로 출발했다. 내비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좌회전을 하라고 지시했다. 부산에서 이틀간 운전한 경험으로 미뤄 봐 우회전을 해야 할 거 같았다. 하지만 내비의 차갑고 단호한 음성을 감히 거역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전화벨이 또다시 울렸다. 형은 어디냐고 물었다. 호텔 주차장에 도착했다고 덧붙이면서.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가사가 뇌리를 스쳤다. 나는 무딘 칼날처럼 힘없이 말했다. “어디냐고 물어보면 광안대교.” 도리어 엄마가 성을 냈다. “이놈의 내비게이션이 통행료 내는 곳이랑 짜고 치는 게 틀림없어.” 그러지 않고서 어떻게 하룻밤 새 두 번이나 광안대교로 안내할 수 있냐는 거다. 광안대교 왕복 통행료는 이천 원이다. 나처럼 광안대교 1.6킬로미터를 건너기 무섭게 바로 유턴할 바보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광안대교 통행료는 천 원으로 알면 된다.
그땐 부아가 치밀었지만 에피소드를 건졌다. 보기에 따라 이번 여행은 성공적이다. 물론 좌충우돌하는 여행을 싫어하는 이도 있을 게다. 에피소드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면 나로선 그런 여행을 하시라고 말할 수밖에. 하지만 아마 색채가 없는 여행이 될 게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계획이 완벽해도 난관에 봉착하게 마련이다.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애당초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그런 게 있다면, 그건 분명히 무채색이겠지.
우리 가족은 마지막 코스로 해운대 센텀시티의 미술관에 들렀다. 이번에는 형이 앞장섰다. 형은 티맵이 정확하다고 핸드폰을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내 차의 내비가 고가도로 옆길로 빠지라고 지시했다. 무슨 일인지 형 차는 냅다 고가도로를 내달렸다. 미술관 주차장에 형 차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쯤이야?” 형은 입맛을 다시는 건지 혀를 차는 건지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답했다. “광안대교요.” 수화기 너머에서 형 차에 탄 아빠의 너털웃음이 들렸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사흘간 광안대교를 세 번 왕복했다. 꽤 오랫동안 기억 속에 ‘부산=광안대교’ 공식이 선명히 남아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