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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호 Jul 11. 2022

도로 위의 적의

카페에서 글을 쓰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네거리 횡단보도 앞이었는데 여름 볕이 바늘처럼 따가운 나머지 눈을 땅바닥에 박고 있었다. 그때 경적 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고개를 들었다. 아마도 신호등이 바뀌어 차량들이 직진을 하는데 정차해야 할 왼쪽 도로 차량이 무리하여 네거리에 진입한 모양이었다. 범인은 빨간색 경차인 것 같았다. 그 뒤를 따르는 오토바이와 흰색 세단이 미사일을 쏘듯 클랙슨을 연달아 눌러댔기 때문이다.


지축을 뒤흔든 경적 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일군의 차량들에 빼앗긴 시선을 거두려는데 세단 차창 밖으로 뻗은 팔이 눈에 거슬렸다. 그건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메달 수여식에서 검은 장갑을 낀 채 높이 들어올린 메달리스트의 팔 같기도 했다. 한여름이라 그런지 장갑을 끼고 있지는 않았다. 대신 엄지와 약지를 제외한 세 개의 손가락을 펴고 있었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의미를 알지 못해 갸우뚱했다. 내 마음의 소리라도 들은 걸까. 그는 둘째와 넷째 손가락을 차례로 접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남은 중지를 허공에 흔들었다. 바람이 빠진 막대 풍선처럼.


일면식 없는 타인을 향한 적의에 흠칫 몸이 움츠러들었다. 경적으로는 화가 풀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동안 손가락 욕을 한 운전자를 쳐다봤다. 얼굴이 까무잡잡한 남성이었는데 잘해야 이십 대 후반으로밖에 안 보였다. 무엇이 그의 내면에 있는 악을 끄집어냈을까.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가 떠올랐다. 할 수만 있다면 덧칠을 해서라도 감추고 싶은 일이다. 한때 나는 도로의 무법자처럼 굴었다. 마치 싸울 구실을 찾는 성난 황소와 같았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출근길이었는데 한 차량이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은 채 불쑥 끼어들었다. 왈칵 분독이 치밀어 올랐다. 그땐 분노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독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클랙슨을 거칠게 눌렀다. 앞차는 내 기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다시 그 앞차를 추월했다. 이번에도 방향지시등이 고장 난 듯 깜박이를 켜는 건 생략한 채. 나는 경광등을 차 루프 측면에 부착하고 피의자 차량을 추적하는 경찰차처럼 힘껏 액셀을 밟았다. 동시에 앞차에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리는 일도 잊지 않았다. 때아닌 추격전을 얼마나 벌였을까. 죽자고 내달리는 차를 따라잡을 재간이 없었다.


신호등을 경계로 하여 한바탕 추격전이 끝났다. 아직도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나오는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제야 부끄러움이 내게 달려들었다. 차창 밖의 모든 자동차들이 나를 보고 있는 거 같았다. 내 차 유리는 애초에 선팅을 옅게 한 데다 오랜 세월 빛을 쬔 탓이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다. 왜 그랬을까. 그저 도로에서 자리 하나를 내준 것뿐인데 회사에서 내 자리를 빼앗긴 것마냥 분노를 터뜨렸다. 어쩌면 회사에서 입지가 탄탄하지 않은 나머지 도로 위에서라도 내 자리를 지키려고 한 건 아닐까. 여기에서도 밀리면 자존심을 내세울 땅이 한 뼘도 없다는 절박함이 무의식중에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저녁을 먹고 산책을 했다. 평소에는 아파트 단지 주변을 도는데 맞은편 아파트까지 다녀오느라 도로를 건넜다. 엄마와 나란히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문득 낮에 목격한 일이 떠올랐다. 엄마는 내 말을 가만히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다들 먹고살기 힘들어서 그래. 사는 게 팍팍해 그런 거라는 말이었다. 낮에 손가락 욕을 하던 운전자는 만면에 비소를 머금고 있었다. 어쩐지 그 얼굴이 예전의 나와 겹쳐 보여 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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