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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호 Sep 02. 2022

모르면 호구된다

#오피스텔 #집구하기 #정보비대칭

한 달 가까이 오피스텔 투어를 다녔다. 이론에 실전을 더할수록 오피스텔 보는 일에 이력이 붙어 갔다. 회사 동료들은 점심시간이면 사라지는 나를 의아하게 여겼을 것이다. 몰래 소개팅이라도 하는 줄 알았겠지만, 실상은 차 안에서 한 손으로 햄버거를 우적우적 씹으면서 방을 보러 다녔다. 그동안 발품을 팔아서 본 방만 열댓 개이고 전화로 문의한 방까지 합하면 서른 개를 훌쩍 넘는다.


처음에는 임대관리업체라든지 신탁회사라는 용어를 듣고 얼굴이 굳어졌다. 무지는 가난처럼 숨기고 싶어도 숨길  없었다. 아는 체하려다 나중에 곤란한 일을 당할까  학생처럼 묻고  물었다. 모르는  창피한 일이 아니지만, 된통 당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상세히 설명해 주는 중개사는 많지 않았다. 손님이 왕이라는 말은 적어도 부동산 업계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왕은커녕 모르면 호구가 되기 십상인 바닥이었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라포르라고 한다. 라포르가 좋다는  흉금을 털어놓을  있을 만큼 친밀하다는 말이다. 나는 병원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런 경우를 많이 보지 못했다. 애초 의사와 환자 사이에 정보 격차가 있어서다. 환자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고, 반대로 의사는 남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손바닥을 보듯 안다. 정보가 의사에서 환자로 흐르니까 판매자와 소비자 관계에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


정보 비대칭적 시장에서 판매자가 소비자에게 정보를 상세히 설명하는 것을 ‘신호 보내기라고 한다. ‘신호 보내기 자신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경쟁자와 차별화시킬  있는 방법이다. 이를테면, 정기적으로 혈압 약을 받으러 병원에 간다고 치자. 이왕이면 친절한 의사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증상에 맞는 처방과 해결책을 제공하는 의사에게 신뢰가 가서다.


오피스텔 투어 첫날 만났던 관평동 중개사에게 믿음이 갔다. 뭘 물어보면 정답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과외 선생님처럼 친절하게 문제 풀이까지 해주는 식이었다. 내심 임대차 계약을 한다면, 관평동 중개사를 통해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관평동에는 마땅한 방이 없었다. 대부분의 중개사들은 ‘what’은 답할지언정 ‘why’와 ‘how’를 말하는 것을 꺼렸다. 혹여 말하더라도 말끝을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고구마 두어 개를 입에 욱여넣은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스스로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에는 전입신고도  모르는 까막눈이었는데, 지금은 업무용과 주거용 오피스텔의 차이, 도시 생활형 주택과 생활 숙박시설의 정체, 자주식과 기계식 주차의 차이를 안다. 아는  많아질수록 묻는 일은 줄어 갔다.


방에 들어가면 곧장 창으로 직행한  핸드폰 나침반을 켠다. 남향이면 별점 5점이고 남동향이면 4, 동향까지는 합격점을 준다. 그리고 창틀 주변과 보일러실을 살핀다. 혹시라도 탕이 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때 벽에 묻은  검은 먼지가 눌어붙은 것인지 곰팡이가  것인지 구별하려면 손으로 문질러 보는 수밖에 없다. 손은 눈보다 정확하다. 이런 나에게  부동산 중개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  까칠하시네요." ‘ 영어의 ‘t’처럼 묵음에 가까웠다.


오피스텔촌에서 고군분투하면서 익힌 요령이 있다. 정보 비대칭 시장에서 숨은 정보를 알아내려면 상대를 경쟁자와 비교하는 것이다. 예컨대 A방을 개한 중개사가 아닌, 경쟁 중개사에게 A방의 장점을 말하는 식이다. 그러면 경쟁 중개사는 A방의 단점을 A4용지에 함초롱 바탕체 10포인트로 그득 채울 만큼 말해  것이다.


실제로 어느 중개사에게 이전에  복층 방이 층고가 높아서 좋았다고 말했다. 중개사는 복층은 창이 높고  탓에 해가 많이 들어와서 덥다고 했다. 당연히 냉방비도 배로 든다고 목에 핏대를 웠다. 내가 입을 반쯤 벌린 채로  있자, 중개사는 어깨를 으쓱 추어올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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