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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호 Sep 17. 2022

60번째 똥을 쌌다

#글쓰기 #작가 #도전

"똥을 50번은 싸야 한대."

오랜만에 만난 G는 예술가의 탄생을 똥 싸는 일에 비유했다. 날 것 그대로의 거친 비유였지만 메시지가 명징해 뇌리에 박혔다. G는 미대 출신인데 지도 교수로부터 들은 말이라고 했다. G의 말인즉슨 50번 똥을 싼 뒤에야 자신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의 부서로 옮긴 날 일기를 썼다. 보통 개학 전날 방학 숙제를 한꺼번에 해치우듯이 며칠 치를 한날에 쓴다. 그날 일기를 그날 쓰는 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그건 그날이 그만큼 인상적이었다는 의미다. 1년여 전 일기에 지금 업무를 하는 걸 상상해본 적이 없다고 적었다. 현재 부서는 수와 규정으로 움직이는데, 10년 가까이 말과 글로 밥벌이를 해서다. 아직도 그날의 기분을 선명히 기억한다. 완전히 0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막막함을. 앞날이 아득했다.


일기는 이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섭섭할 건 없다고, 시원할 뿐이라고. 이제 타인을 위한 글이 아닌, 나를 위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어서다. 글쓰기에 대한 갈증을 회사가 아닌 집에서 풀겠다는 심산이었다. 내 이야기를 썼다. 처음에는 글이 술술 나왔다. 퇴근하고 글을 쓰는데도 매일같이 썼으니까. 한 번도 방류하지 않은 댐의 수문을 처음으로 연 것처럼. 하지만 댐이 바닥을 드러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만 모르고 있었다. 애초 댐 저수량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글을 쓰는  힘겨운 일이 됐다. 마땅히  소재가 없어서, 딱히 반응이 없어서, 남의 글에 비해 초라해 보여서  글이 무용하게 느껴졌다. 글을 쓰고 나서도 마음이 헛헛했다. 어떤 날은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런 날은  헛헛했다. 아무리 무용한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가슴에 구멍이  것만 같았다. 휑뎅그렁하게. 정말이지 뭐라도  안에 채우려고 꾸역꾸역 썼다. 채우려면 비워야 한다는  아이러니했다. 하긴, 세상엔 말도  되는  투성이니까. 


G는 일명 똥 이론을 설파하면서,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를 걱정하듯 여러 번 이 말을 되풀이했다. 똥을 싸는 동안 자신의 작업이 하찮게 느껴지거나, 주변에서 작품을 깎아내리는 말에 흔들릴 수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말고 계속 쓰라고. 거듭되는 실패와 주변의 시기와 질투를 견뎌내야만 더 이상 똥이 아닌 알을 낳을 수 있다는 말이었을 게다.


나는 이 글로 60번째 똥을 쌌다. 50번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내 글은 똥이다. G의 지도 교수는 왜 하필 50을 콕 집었을까. 아마도 50은 상징적인 숫자였겠지. 그 자리에는 80이나 90이나 100이 대신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40번을 채워 100번째 똥을 싸면 그다음부터는 알을 낳을 수 있을까. 언제쯤 글을 쓰고 나면 든든한 기분이 들까. 알 수 없다. 똥이라도 싸지 않으면 마음이 헛헛해 오늘도 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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