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by 이은지

검은색, 흰색,

기껏해야 회색인

매끄럼한 사람이 되어야

무난하게 잘 살 수 있더랬다.


그래서 나는 검은색이 되었다가 흰색이 되었다가

가끔은 회색이 되는 정도의 일탈을 허용하며


반딱반딱

둥그스름하게 나를 닦아

세상에 내놓았다.


수많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기에는

그래, 정말이지 둥글 매끈한 회색인 것이 편했다.

아니, 심지어는 유리한 순간도 더러 있었다.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 만큼

선명하게 싫어하는 것도 없었기에


다수의 결정에 물 흐르듯

나를 얹어야만 하는 순간에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둥글매끈 회색으로 잘만 굴러가던 내가

처음으로 불편함을 맞닥뜨린 순간은

모순적이게도 그토록 원하던 [자유시간]이 주어졌을 때였다.



대학만 가면, 취업만 하면

취미나 취향을 향유하는 [자유시간] 이

허락된다고 배웠다.

그런데 막상 그 [자유시간]이 나에게 주어지니

나는 당최 내가 그 시간에 뭘 해야 하는지 몰라

황망하기까지 했다.


퇴근 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하면 내 기분이 나아지는지조차

명료하게 답할 수가 없었고,


이런 상태라면 [무난하게]는 살 수 있을지언정

[잘] 살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

.

.


스스로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기에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같은 질문은 당장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 더 쉬워 보이는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

에 답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이 뭐냐"는 물음에

가장 먼저 드는 생각들이라고는


좋아하는 거?

좋아한다는 게 뭔데?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좋아함"이라는 것을

보다 선명하게 감각하기 위해

왠지 모르게 하여간 기분 좋은 순간이 오면,

그 자리에서 멈춰 어김없이 메모장을 켰다.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고,

누구와 무슨 대화를 했는데

어떤 기분이 들어, 왜 좋았는지


구체적으로 적는 것을

계속했다.



덧칠하고 또 덧칠하기만 했던

그 검은색과 흰색 아래에 무슨 색이 자리하고 있는지

알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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