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찾는 이들이 쪼그라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어요?"
대답하자면 제목 그대로다.
의미를 찾는 이들이 쪼그라들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 그 마음이 전부다.
20대 시절의 나는 참 쉽게도 쪼그라들었다.
남들이 말하는 목표점까지 의심 없이 달려 7급 공무원이 되었지만,
죽은 듯이 계속되는 나날을 지속할 수 없어 그만뒀다.
"나"라는 인간에게는
생계 못지않게 "의미"도 중요하다는 걸 온몸으로 체감하며, 살기 위해 공무원을 그만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내가 정말 사회가 말하는
"약해빠진 낙오자"가 아닌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괴롭히며
쪼그라들기 일쑤였다.
돌아보니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세상에는 이런 인생도 있고,
저런 선택도 있는 법이다.
생계도 돈도 중요하지만,
"의미"역시
그만큼 중요한 사람도 있을 수 있는 법이었다.
또, 찾아본 적 없어 막막한 것이지
막상 찾아보면 별 것 아니었고,
얼마든지 생계와 의미,
그 중간 지점에서 타협하며
그런대로 괜찮게 적당히 잘 살 수 있었다.
그걸 몰랐던 그 시절의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쓸데없이 쉽게 쪼그라들었고,
여전히 그런 이들을 보면 마음이 쓰리고, 속이 탄다.
그래서, 의미를 찾는 이들이 쪼그라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이 일을 한다.
시작은 에세이 출간이었다.
에세이를 읽는다는 것이 그렇지 않나,
나조차도 나를 위로할 수 없는 날,
타인이 그 본인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을 읽으며
그렇게 스스로를 토닥여 주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에세이를 썼다.
내가 그 시절을 지나며 가장 절실했던 말은
"너만 그런 건 아니야."
"네가 이상한 게 아니야."
"방황의 시간은 필요하고,
그 시간이 힘든 건 당연한 거야."
였다.
그렇게 내 책을 읽는 이들이
스스로를 안아줄 수 없는 날조차도
내가 겪었던 일들과 감정들,
그리고 내가 나 자신에게 건넸던 말들로
자신을 안아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독하리만큼 대문자 T인 인간이었다.
어떤 책을 읽어도 "그래서, 어쩌라고?"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으면 화가 났다.
내 책이라고 예외는 없었고,
나는 다 만들어진 나의 책을 읽고 화가 났다.
"그래서, 어쩌라고?"
.
.
.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것이
[직업 말고, 내:일 찾기] 강의/컨설팅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