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암 투병 일기 네 번째 이야기
쓰기 시작할 때는 꾸준하게 올리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역시 계획은 틀어져야 제 맛이다. 우리 가족의 세상을 활자로 옮기다는 게 이다지도 어려운 일이었을 줄이야. 그럼에도 다시 쓰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이 글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기에.
'수술 중' 칸에서 불이 꺼지고 '회복실 이동'에 불이 들어온다. 단톡방에 엄마의 톡이 올라왔다.
'수술 끝났어' 아빠가 수술을 이겨낸 것이다. 이모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전전긍하던 나의 어깨에서 드디어 힘이 빠진다. 동시에 허무함과 허탈함이 몰려왔다. 2시간이 넘는 시간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어놨다. 항상 최악의 순간들을 상상해왔던 나에게 '끝'이란 단어는 그랬다.
엄마가 전화를 걸어왔다. 마취에서 깨어난 아빠의 목소리는 밝았다. 나중에 들은 사실로는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재강씨(나의 아빠)는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오자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꼈다. 동시에 마취에서 깨어나는 것을 느끼자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몸부리치기 시작했다. 나 좀 살려주시오. 불행하게도 회복실엔 재강씨뿐만 아니라 다른 수술을 마친 환자들도 있었다.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는 재강씨에게 간호사는 다가와 경고를 줬다. 다른 환자들 방해하지 말라고.
아빠의 목소리와 함께 동시에 드는 생각은 엄마를 향한 걱정이었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엄마였을 텐데. 수술실 앞에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수술 전날 엄마와 바통을 터치했을 때, 엄마는 아빠의 손을 붙잡고 기도를 시작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거칠어진 남편의 손을 붙잡고 무언가 수없이 중얼거렸다. 나와 마찬가지로 무교인 그의 남편 역시 이번만큼은 질끈 눈을 감았다. 그들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린다. 그 떨림은 나에게도 전달된다. 나 역시 아무 말하지 못하고 그 떨림, 전율 속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 후 다음 날, 엄마와 아빠를 보러 병원으로 향했다. 그들과 떨어져 있었던 것은 불과 며칠인데 엄마의 눈밑이 검었다. 회복을 위해선 산책이 필요했는데 거동이 불편했던 아빠가 사정없이 엄마를 깨워댄 것이다. 엄마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였다. 당연하게도 아빠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빠는 복강경과 로봇절제수술 중 복강경을 택했다. 수시간이 넘는 수술은 아빠의 장을 7cm 정도 잘라냈다. 아빠 많이 아팠어? 당연하지. 여기를 7cm 넘게 잘라냈는걸. 아빠는 자랑스럽게 영광의 흉터가 있는 부위를 가리킨다.
엄마의 월차가 끝이 나고 전문 간병인이 아빠를 맡게 됐다. 낯선 이가 자신을 보살핀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불편했던 재강씨는 작은 딸의 방문을 재촉했다. (당시 나는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온 터라 굉장히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비대면 수업이었지만 서류 처리를 위해 학교도 가야 했고, 어학 시험도 쳐야 했다.)
계속되는 아빠의 채근에 백기를 든 난 다시 병원으로 향한다. 남에게 원체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는 성격인 그인지라 간병인에게 아무런 부탁을 하지 못하고 혼자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간병인께 음료수 하나를 건네고 제가 돌보고 있겠다고 조심히 말씀드린다. 간병인이 나가자 참아왔던 아빠의 입이 터진다.
병원 복도를 뱅글뱅글 돌면서 그의 무용담을 듣는다. 그의 무용담은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살아남았다는 기쁨. 미리 검사를 해봤으면 좋았으리라는 후회. 수술 이후 항암에 대한 두려움.
그렇게 아빠는 수일의 입원이 끝나고 나와 함께 광주에 내려왔다. 기차 안에서도 그의 무용담은 계속된다. 수술에 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결심을 해야 했는지, 엄마가 내시경 검사받으라고 했을 때 진작에 받을 걸. 내가 언제 서울에 와서 이렇게 수술을 받아보겠냐고. 항암은 얼마나 무서울까. 등등
항암은 얼마나 무서울까?
아빠에겐 8번의 항암이 예정돼 있었다. 한 달에 1번씩 다시 서울대 병원으로 와서 항암을 맞아야 한다는 사실. 이 고통스러운 수술이 끝났음에도 더한 고통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그는 몸서리쳐했다.
항암. 그렇다. 수술 이후가 진짜 시작이었다. 당시 우리는 다가올 항암의 고통을 감히 예견하지도 못했다.
* 아빠의 암 투병일기- 네 번째 이야기
딸이 쓰는 아빠의 암 투병일기. 우리 가족은 오늘도 이겨내는 중.